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소주

등록 2015-08-31 18:42


“의무사관에게 부탁하여 의료용 알코올과 포도당 주사액을 얻었다. 큰 병에 이들 각각 500㎖씩과 잘게 빻은 비타민제를 넣고 흔들어 섞으니 훌륭한 소주가 됐다. 장인 되실 분이 술을 좋아한다니 첫인사 선물로는 안성맞춤이다.” 6·25전쟁 중 결혼 승낙을 얻으러 애인 집을 방문했던 의무병이 남긴 회고다. 아는 내과의사에게 저런 술을 마시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더니, “당장 큰 해는 없겠지만, 자주 마시면 간이 못 견딜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술은 인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늘 신성한 음료였다. 인간은 술을 마시면서 본래의 자기를 모든 면에서 능가하는 또 다른 존재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술 취한 인간은 초인(超人)이거나 비인(非人)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례에 술을 쓰는 것도, 술병과 술잔을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게 만드는 것도, 술 마실 때 먼저 하늘에 헌정하는 동작을 취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술을 통해 신에 접근하는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준 것이 8세기께 이슬람 연금술사들에 의한 증류주 발명이었다. 알코올이란 아랍어 이름이 붙은 이 물질은 13세기께 이 땅에 들어와 아락주, 화주, 소주 등으로 불렸다. 효능이 발효주보다 월등히 높았던데다가 손이 더 가고 같은 재료로 얻는 양이 훨씬 적었기 때문에, 수시로 소주를 취할 만큼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서민이 아니었다.

서민이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소주 값이 떨어진 건 1920년대 말, 설탕을 추출하고 남은 사탕무 찌꺼기인 당밀로 알코올을 만들면서부터였다. 이 알코올에 물을 탄 것을 ‘신식 소주’라 했다. 1965년 정부가 쌀을 원료로 하는 술의 제조를 금지한 뒤로 증류 소주는 사라지고 희석식 소주만 남았다. 그리고 언제인가부터 이 술에는 ‘서민의 벗’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희석식 소주는 현대 한국인의 알코올 소비량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은 일등공신이다. 하지만 오늘날 ‘서민의 벗’을 자처하는 것들이 대개 그렇듯, 진정 서민에게 도움이 되는 물질은 아니다.

전우용 역사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