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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교과서

등록 2015-09-07 18:48

공자는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책을 교재로 사용하지 않았으나 그와 제자들 사이의 대화 내용은 후에 논어(論語)라는 책으로 묶여 사제가 함께 읽어야 하는 필수 교재가 되었다. 공자와 함께 인류의 4대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석가모니와 소크라테스, 예수도 제자들을 가르칠 때 책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글들을 묶은 책이 이후 각 종교권의 기본 경전이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들 경전이 교재이긴 했으나 교과서는 아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 이전의 학문은 분석적이기보다는 통합적이어서, 선험적으로 전제된 우주론에 기초하여 세상 만물을 해석하고자 했다. 예컨대 유교 지식인들에게는 전공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의 사물이라도 알지 못하는 것은 지식인의 수치’라는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유학만을 유일한 학문, 즉 정학(正學)으로 취급했고 산학, 율학, 음양학, 의학 등 유학에 편입되지 않은 분야는 뭉뚱그려 ‘잡학’(雜學)이라 불렀다. 중세 유럽에서도 어문과 신학, 역사, 천문학 등은 하나로 묶여 있었다. 수집과 분류, 배열과 종합의 과정을 거치는 분석적 접근법이 일반화한 17세기 이후에야, 교육 내용을 ‘분할’한 교과목들과 과목별 교재인 교과서들이 생겼다.

우리나라 최초의 교과서는 1889년 육영공원 교사 헐버트가 한글로 집필한 세계지리 교재인 <사민필지>인데, 교과서가 본격적으로 발행된 것은 1895년 <교육입국조서> 공포 이후였다. 신교육을 받는 학생이 늘어나면서 교과서 발행도 급속히 늘어나 주요 과목에 국정교과서만 사용된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학무국 발행 교과서는 최다 발행 부수를 자랑했다.

교과서는 현대인이 가장 많이 읽는 책이며, 반드시 알아야 할 것과 알 필요가 없는 것을 구분해 주는 책이다. 여러 경로로 이루어지는 서로 다른 ‘앎’들에 대해 옳고 그름의 준거를 제시하는 것도 교과서다.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들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창의력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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