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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30 잠금해제] ‘고통의 이미지’와 ‘이미지의 고통’ / 오혜진

등록 2015-09-13 18:36

‘미국 지성계의 여왕’으로 불린 수전 손택은 1993~1995년에 사라예보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리며 전쟁 보도사진을 다룬 책 한 권을 썼다. <타인의 고통>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책에서 그녀가 쓴 것은 모두를 울부짖게 만드는 사진의 ‘뜨거움’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진이란 그것을 보며 연민할 수 있는 이들의 알리바이일 수 있다는 것, 즉 사진의 ‘차가움’과 ‘우울함’에 대한 것이었다. 이 책에서 그녀가 잘 지적하듯, 우리에게는 이미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멀리서)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수없이 많다. 아니, 스펙터클로만 현실을 인지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고통의 이미지’는 범람하며, 그 이미지들은 각각의 고통을 그저 그런, 대동소이한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걸 보는 이들은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구경꾼, 겁쟁이, 관음증 환자가 된다.

그럼에도 터키 해안가로 떠내려온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주검을 담은 한 보도사진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린 ‘뜨거운’ 사진이 됐다. ‘네이팜탄 피폭 소녀’를 찍은 후인꽁읏의 사진처럼 두고두고 회자될 이 사진은 유럽시민들에게 난민 인권의 중요성을 단번에 환기시켰고, 결국 난민 수용에 대한 전향적 조치를 이끌어내기까지 했다. 유럽시민들로 하여금 난민들에게 담요와 음료수를 가져다주고, 자기 집을 개방하게까지 한 이 사진의 마법은 무엇일까. 손택은 말했다. 실제의 공포를 촬영한 이미지를 쳐다볼 때에는 충격과 더불어 ‘수치심’이 존재한다고. 그것을 쳐다볼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사람은 그 고통을 격감시키려 뭔가를 할 수 있었던 사람, 혹은 그 고통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었던 사람밖에 없다고.

그런가 하면, 어떤 사진들은 여전히 ‘그토록 필사적으로 보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지하철에서, 화장실에서, 학교와 영화관에서 여자들의 몸과 사생활을 몰래 찍은 그 사진들 말이다. 우습지만, 초소형카메라가 발명됐을 때 떠올린 것은 정보선진국들이 벌이는 은밀한 첩보전과 같은 세련된 스파이 서사였다. 그런데 지금 넥타이핀 구멍보다 작고, 가격도 몇십만원에 불과하다는 이 첨단의 카메라에 찍힌 것은 그저 무수한 여자들의 살점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공상과학적 로망은 물론 일말의 에로티시즘조차 없다. 그것들은 한낱 개인의 정보력을 과시하고, 글 조회수를 올리며, 장당 몇십 원에 팔리기 위해 전시될 뿐이다. ‘몰카를 찍지 마세요’가 아니라 ‘몰카를 조심하세요’라며 피사체(피해자)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이 나라에서 ‘본다는 것’의 수치심을 묻는 일은 차라리 사치 같다. 하지만 묻자. 이것은 왜 ‘인권’의 문제 혹은 숙고해야 할 ‘타인의 고통’이 아니란 말인가.

오혜진 근현대문화 연구자
오혜진 근현대문화 연구자
다시 손택의 말. 그녀는 카메라란,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진에 찍히는 사람에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도덕적 한계와 사회적 금기를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여권”이라고 썼다. 아마 그녀는 피사체의 공포 속으로 뛰어들지 않는 사진의 욕망과 윤리에 대해 암시하려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무방비상태로 닥쳐오는 수많은 ‘고통의 이미지’들과 ‘이미지의 고통’ 앞에서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난민협약 가입국으로서 한국의 유명무실한 ‘난민법’의 실효화를 촉구하는 일, 그리고 ‘100만 회원’을 자랑한다는 불법 성인사이트 ‘소라넷’의 폐지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일.

오혜진 근현대문화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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