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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설악산 정상부에 상처 내선 안된다 / 공우석

등록 2015-09-14 18:28수정 2015-09-14 20:50

고산지 생태 연구를 위해 삼십년 이상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 국내 높은 산과 외국의 고산을 답사하면서 산의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깊고 멀리 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산행 끝에 산정과 능선에 올라 울창한 산림과 경관을 조망하면서 호연지기를 키우는 것은 등산의 묘미다. 황폐한 산림을 푸르게 만들려는 박정희 정부의 정책과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숲을 가꾼 덕분에 우리나라는 모범적인 조림국가가 되었다. 산림녹화는 경제 발전, 민주화, 정보화와 함께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대한민국의 자랑거리다.

설악산국립공원 산정부에 가까운 봉우리에 케이블카와 4성급 호텔을 건설하여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산정부 개발은 경제적 효과보다는 자연생태계에 부담과 피해를 끼치는 무리한 계획이라는 우려가 높다. 산정부에 케이블카와 호텔을 건설한 유럽 등은 우리와 자연환경과 풍토가 다르다. 산정부 개발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봄철 고온건조한 날씨, 여름철 폭우와 태풍, 겨울철 강풍, 혹한, 안개가 잦은 변화무쌍한 기후와 함께 특유의 식생, 지질, 지형, 토양 등을 가진 백두대간에 유럽을 사례로 삼아 산정부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삼림한계선 위에 발달하는 수직식생대인 고산관목대나 고산초원대에 교통과 숙박시설을 건설한 외국과는 달리 설악산 끝청 일대 산정부는 산림지대다. 이곳에 케이블카와 호텔 등을 건설·운영하는 과정에서 산림과 생태계의 피해와 환경오염은 불가피하고, 산불, 태풍, 혹한, 폭설 등이 발생하면 치명적인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고산과 아고산은 사면의 경사가 급하고 토양층이 얇고 기후가 열악하고 생태계는 연약하므로 작은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자연생태계가 교란·파괴된다. 충격에 대한 복원력이 낮아 시간이 지나도 원상복구가 힘들거나 불가능하다. 산림 남벌 피해를 입은 지리산의 제석봉, 대청대피소가 있었던 설악산 대청봉, 침식과 붕괴가 진행중인 한라산 백록담 분화구와 정상부 일대는 수십년이 지나도 산림과 생태계가 원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백두대간과 한라산 산정부의 극지고산식물들은 우리나라가 지구상 분포한계선으로 한반도 자연사 복원의 열쇠다. 또한 이들은 기후변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관측하는 지표종으로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절대보전이 필요한 식물들이다. 산정부 개발이 적절하지 않은 이유다. 산지 개발을 통한 경제활성화가 굳이 필요하다면 국립공원, 천연보호구역, 자연생태계보전지역, 산림유전자원보전지역 등 국가가 자연생태계와 산림 보전을 위해서 법률에 따라 지정한 구역 바깥에 지역 특성에 맞는 시설의 타당성을 검토해야 한다.

피와 땀으로 가꾼 산림을 일부 이해관계자들의 단기적 이익의 희생물로 삼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국가의 산지보전 정책은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특정 지역·계층에 편익이 치우치지 않고 국민 모두와 미래세대의 이익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일제가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정기를 꺾기 위해 산정부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분개하며 제거해야 한다는 기사가 언론에 오르내린 것이 엊그제 같다. 우리 스스로 산정부에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내는 것을 어떤 논리로 변명할 것인가.

공우석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
공우석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
아름다운 산, 계곡, 사찰과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진 곳이 설악산이다. 당국이 고민해야 할 문제는 산정부의 시설이 아니라 방문객을 감동시켜 체류기간을 늘리고 지역주민의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자연, 생태, 역사, 문화, 특산물, 관광 콘텐츠의 발굴과 관광 프로그램의 개발이다.

공우석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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