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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승강기

등록 2015-09-21 18:46수정 2015-09-21 22:43

20년쯤 전, 신도시 고층 아파트에 갓 입주한 40대 남성이 퇴근 후 귀가하자마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건강해 보였던 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고장난 승강기였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다 그렇듯이, 이 경우 엘리베이터는 사람을 해치는 흉기로 작동했다.

암벽 꼭대기에 도르래를 걸어 놓고 사람과 물자를 끌어올리는 수동 승강기는 먼 옛날에도 있었고, 18세기 후반에는 프랑스 왕궁 안으로까지 들어왔다. 1853년 미국의 발명가 엘리샤 오티스는 추락 방지 장치를 발명해 승강기의 안전도를 높였으며, 1880년에는 독일의 지멘스사가 전기로 움직이는 승강기를 개발했다. 빠르고 안전한 승강기는 건물의 고층화를 이끌었다. 1931년, 미국 뉴욕에 높이 448m의 102층 건물이 솟아올랐다. 이로부터 하늘에 닿는 누각, 즉 마천루(摩天樓)의 시대가 열렸다.

1910년 금괴와 화폐 운반용으로 조선은행(현재의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 설치된 것이 한반도 최초의 승강기이며, 1914년에는 철도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의 전신)에 사람을 실어 나르는 승강기가 설치되었다. 호텔 구경은 엄두도 못 내는 보통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승강기는 1937년에 화신백화점이 처음 선보였다. 당시 한 한글신문은 이 신기한 물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이렇게 소개했다.

“엘레베타 앞에는 뚱뚱한 신사를 필두로 수많은 사람들이 엘레베타가 내려오기를 대단히 긴장한 채 대기하고들 섰다… 엘레베타는 일사천리 위로 달음질치듯 올라간다. 그 순간! 시골서 온 듯한 영감님의 눈은 경이와 불안을 느낀 채 급속도로 회전한다.”

현재 한국의 승강기는 50만대 이상, 인구 100명당 한 대꼴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집과 직장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 또는 수십 차례씩 승강기를 이용한다. 힘들이지 않고 수직상승하는 공간이동을 경험하게 해주는 이 물건은, 같은 방식의 신분이동을 열망하는 현대인들과 아주 잘 어울린다. 승강기가 멎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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