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앱게임 ‘모뉴먼트 밸리’를 스마트폰에 내려받아 10개의 챕터를 완파했다. 기하학적 구조물과 착시현상을 활용해 탈출구를 찾아 다음 무대로 나아가다 보면 “천재들이 만들었구먼!” 하는 감탄사가 멈추지 않는 게임이다. 꽉 막힐 때도 있지만 잠시 쉬었다 재시도하면 좀 전까진 안 보이던 길이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일곱살짜리 딸이 “내가 해볼게!”라며 낚아채 어딘가를 건드렸는데 길이 열리는 경우도 있었다. 분량과 난이도도 적당해, 인터넷에 즐비한 공략집을 참고하지 않고도 몇 시간 안에 깰 수 있었다.
웬 게임 얘기? 새누리당 담당 기자로서 요즘 여러가지로 구석에 몰린 김무성 대표에게 신경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다 보니, 게임을 하고 나서도 그가 떠올라서 하는 얘기다. 정치도 위기에 처했을 땐 잠깐 멈춤(포즈)해서 공격을 피할 수 있다면, 그 스테이지만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필요할 땐 아예 공략집 갖다 놓고 따라할 수 있다면 어떨까? 재미는 없겠지만 사활이 걸린 당사자는 그러고 싶을 때도 많으리라.
‘무대’(무성 대장)라는 별명을 가진 김무성 대표는 지난해 7월 ‘수평적 당-청 관계’를 내걸고 당원들의 선택을 받은 뒤 박근혜 대통령 및 친박근혜계와의 관계에서 세번의 무대(스테이지)를 거쳐 왔다. 지난해 가을 상하이발 개헌 발언, 겨울~올봄 여의도연구원장 인선 갈등, 그리고 지난여름 유승민 원내대표 축출 사태. 결과는 매번 김무성의 굴신과 청와대·친박의 승리였다.
그리고 이제 펼쳐지고 있는 네번째 무대. 김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공언해온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에 대한 친박의 집단적 반발과 ‘김무성 대권 불가론’, 그리고 시기적으로 맞물린 사위의 마약 전과 공개까지…. 동시다발적 위협은 ‘친박계의 10월 대공세’ 관측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 대표의 측근 김성태 의원이 이렇게 분통을 터뜨린다. “지금 김 대표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박 대통령 예스맨이 되어 있지 않나. 박 대통령 위해서라면 앞뒤 사정 안 가리고 총대를 메고 지극정성을 다 하고 있는데…. 무슨 불충을 했나.” 김 대표가 지난 세 무대에서 양보한 것 말고도, 공무원연금 개편 성사에 이어 최근 ‘꼴보수가 되려느냐’는 비난을 들어가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노동시장 개편에 앞장서온 점까지 돌아보면 수긍이 가는 얘기다.
김 대표를 지지해온 이들은 급속도로 냉담해지고 있다. “배짱, 콘텐츠, 레토릭(언어) 가운데 뒤의 두가지는 대표의 직무상 극복되는 것 같지만 배짱은 그대로인 것 같다”(재선 의원), “대장을 하려면 ‘깡’이 있거나 지략이 있어야 하는데, 둘 다 찾아보기 어렵다”(고참 보좌관). 정두언 의원처럼 “현직 대통령에게 ‘깨갱’ 하고서 큰 지도자가 된 경우는 없었다”고 대놓고 말하는 이도 있다. 표현만 조금씩 다를 뿐, 다 같은 얘기다.
김 대표의 네번째 무대는 난이도가 확 올라갔다. 토를 달기에 박 대통령 지지도는 너무 높고, ‘비박’은 다수이로되 단단한 원군은 잘 안 보인다. 게임에선 무대를 옮길수록 포인트가 쌓이고 힘도 세지지만, 김 대표는 오히려 반대였다.
이제 어떤 공략을 펼 것인가. 개인적으로 오픈프라이머리가 정답은 아니라고 보지만, ‘내리꽂기’, ‘줄세우기’를 없애겠다는 그 정신만큼은 공감한다.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말이 그저 ‘강조’의 수사가 아니었다면, 그 정신이라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지난 세번의 무대에서처럼 몸을 낮춰 ‘위기 모면’의 길을 택할 것인가. 새 길을 모색할 것인가. 게임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지만, 이 점 한 가지. ‘모뉴먼트 밸리’는 탈출해야 게임이 끝난다.
황준범 정치부 기자 jaybee@hani.co.kr
황준범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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