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우스, 미노스, 헤라클레스, 예수 등은 신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다. 단군은 잠시 사람의 형상을 취한 신과 역시 사람으로 변신한 곰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고주몽과 박혁거세는 알에서 나왔다. 영웅으로 번역되는 히어로(Hero)와 서로 다른 종 사이에서 낳은 자식을 뜻하는 헤테로(Hetero)는 어원이 같다. 고대인들은 나라를 세우거나 인류를 구원하는 존재는 바로 이들 ‘반인반신’ 또는 ‘반신반수’들이라고 믿었다.
세속 왕조시대가 열린 이후로는 왕의 행적이 역사의 기본 줄기가 되었다. 왕 아닌 사람들의 업적이 대서특필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나, 그들의 일생은 왕의 연대기에 부속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면, 보통사람들의 업적은 대개 왕의 것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근대 국민국가 시대가 열리면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관념이 확산되고, 운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개척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강해졌다. 신의 아들도 왕의 아들도 아닌 사람들 중에서 ‘위대한 인물’들을 발굴하여 그들의 일생을 통째로 소개하는 ‘위인전’이 아동과 청소년의 필수 읽을거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세기 벽두부터 충무공, 최영, 을지문덕 등의 전기가 속속 발간되었고, 1906년에는 대동서관에서 <중서위인전>(中西偉人傳)이라는 위인전 모음집을 출판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인 위인들을 소개한 책이 발간될 수 없었으나, 해방 이후에는 <소년소녀 한국 위인 전기전집> 같은 책들이 월부 책장수들을 통해 각 가정의 아이들 책꽂이에 자리잡았다.
현대 한국인치고 어려서 위인전 한두 권 안 읽어본 사람은 없을 터이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도 역사의 주역이 될 수 있음을 알리기는 했으나, 어려서부터 드러나는 비범성, 모든 역경을 극복하는 불굴의 의지, 결함을 찾기 어려운 완벽한 인간성 등 천편일률적인 ‘위인의 모델’을 만들어냄으로써 신의 자식들이 역사를 이끈다는 고대적 의식을 재생시키는 주범 구실도 했다.
전우용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