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날인 2010년 9월21일 서울과 경기도에 259.5㎜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지하철이 끊기고 여러 곳이 침수됐다. 다음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침수 피해가 컸던 서울 양천구 신월1동 다세대주택을 찾았다. 그날 저녁 <한국방송> 뉴스에서 대통령은 넋을 잃은 수재민에게 “기왕 (이렇게) 된 거니까, (마음을) 편안하게”라고 말한다. 수재민이 “(마음을) 편안하게 먹을 수가 있어야죠”라며 울먹이자 대통령은 “(그래도) 사람이 살아야지”라고 말했다. 뉴스를 본 많은 이들이 화를 냈다. 대통령에겐 고통에 대한 공감도, 재난 방지의 책임자라는 인식도 없다는 것이었다. 한 수재민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함부로 그렇게 마음 편히 먹으란 이야기 못하죠”라며 눈물을 흘렸다.
‘기왕 이렇게 된 일’ 혹은 ‘기왕지사’(旣往之事)는 많은 경우 포기의 논리다. 꼼짝 못할 증거로 추궁을 받은 피의자가 “이왕 이렇게 된 것, 사실대로 다 말씀드리겠습니다”라며 범죄사실을 털어놓는 심경변화의 이유일 수 있다. 거꾸로, 무고한 혐의를 뒤집어쓴 이에게 “기왕 이렇게 됐는데, 형이라도 가볍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허위자백을 강요하는 유혹의 논리가 되기도 한다. 법학자 리처드 A. 레오는 “피의자신문의 심리학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과 소용없다는 느낌,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구조화되어 있다”(<허위자백과 오판>)고 설명한다.
‘이왕 벌어진 일인데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포기의 논리는 부역과 변신의 핑계가 되기도 한다. 친일의 상황 논리가 그러했고, 5공 신군부의 쿠데타 이후에도 그런 말을 앞세운 이들이 많았다.
지금 그 비슷한 모습을 본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신문은 ‘국정화 반대’였다. <한겨레>와 <경향>은 물론, 보수라는 <중앙일보> <동아일보>도 마찬가지였다. 10월8일치 <중앙일보> 사설 ‘역사 교과서 편향, 국정 아닌 심의 강화로 바로잡자’는 “역사해석의 권리를 국가가 독점하는 국정으로 회귀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밝혔다. 10일치 이 신문 논설위원의 칼럼은 국정화 주장에 대해 “썩은 내 나는 이념의 입을 닫아라”고 질타한다. 10월8일치 <동아일보> 사설도 “검정제부터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야 할 일이지 국정화 전환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진단과 처방이 잘못됐다”며 “1974년식의 국정 국사교과서 체제로 돌아갈 순 없다”고 못박았다.
정부가 10월12일 국정화 방침을 발표한 뒤에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었다. <중앙일보>의 13일치 사설은 ‘올바른 한국사 교과서의 전제조건은’이었고, 15일치는 ‘역사 교과서 해법, 고품격·양질의 콘텐트에 있다’였다. 요약하자면, ‘이왕 발행하기로 결정한 만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겠다. ‘정부여당, 국정교과서 후폭풍 감당할 자신 있는가’(12일치 사설)라고 따지던 <동아일보>는 ‘국정화 논란 말라는 대통령 발언으론 국민 설득 어렵다’(14일치 사설)고 짐짓 걱정하는 투로 한발 물러선다. 같은 날 <조선일보> 사설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대통령 설명 아직 부족하다’였다. 그러고선 기사를 통해 경쟁적으로 있지도 않은 기존 교과서의 편향성을 부각하고, 국정교과서를 ‘제대로, 잘’ 만드는 방법을 제시한다. 국정화를 말렸던 이유와 문제점은 그대로인데, 이젠 기왕지사라며 뒤로 밀쳐놓고 엉뚱한 데 짐짓 열을 올린다.
그렇게 얼렁뚱땅 넘길 일은 이미 아니다. 대통령 한 사람의 억지에서 비롯된 이번 일이 애초 잘못이라면, 설령 말려 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절망감만 자아내는 청맹과니 정권이더라도 한사코 잘못은 말려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일은 보수나 진보, 혹은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주의 시대로 돌아가겠다는 그 시도 자체의 야만성과 후진성이 문제 아닌가.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여현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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