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11월의 정부 조사 결과를 보면 38선 이남에는 공설 10만80개, 사설 12만4016개, 총 22만4096개의 우물이 있었는데, 그중 위생적으로 불량한 우물은 공설이 78%, 사설이 50%였다. 상수도 보급률이 높았던 서울에도 5만2030개의 우물이 있어, 많은 시민들이 오염된 우물물을 마시고 살았다.
사람은 수십일간 단식을 해도 살 수 있지만, 물을 끊고서는 단 며칠도 버티지 못한다. 물이 없는 곳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 화성에서 물이 발견됐다는 소식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물이 풍부하지 않은 곳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도시가 만들어지지 못한다. 물은 말 그대로 생명의 원천이자 문명의 발원지다.
조선 태종은 한양으로 재천도한 직후 다섯 집에 하나씩 우물을 파도록 했다. 대략 25명당 하나꼴인데, 1949년까지도 우물 대 인구의 비례는 그대로 유지되었던 셈이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류의 절대다수는 자연적인 정화 과정을 거친 우물물을 마시며 살았다. ‘강물’을 마시는 인간이 대량으로 출현한 것은 상수도가 본격 보급된 이후였다.
1898년 1월, 고종이 설립한 한성전기회사는 한성 내 상수도 부설권을 독점했다. 하지만 상수도 공급 시설이 실제로 완공된 것은 1908년 6월 영국인의 대한수도회사(Korea Water & Works Company)에 의해서였다. 이 회사는 뚝섬에 정수장을 건설하고 서울 전역에 수돗물을 공급했다. 당시 수도꼭지를 통해 직접 수돗물을 받아 쓸 수 있었던 곳은 관공서와 병원 정도였고, 보통사람들은 물장수가 받아 오는 수돗물을 사 먹어야 했다. 그 뒤 대문 안에 수도꼭지를 두는 집이 점차 늘어났지만, 해방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수돗물 사용가’라는 딱지는 부잣집 대문에나 붙을 수 있었다.
현대의 한국 가정에는 정수한 강물이 흘러나오는 수도꼭지가 대여섯개씩 있다. 이제 강물은 ‘생명의 원천’이라는 지위를 사실상 독점했다. 그런 강물을 오염시키는 건, 생명에 대한 대죄(大罪)다.
전우용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