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는 광복 직후 1946년 창설된 기관으로 현재 사료의 수집, 편찬과 국사의 보급을 주관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국사교과서를 개편함에 있어 그 업무를 맡아 주관하는 것이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광복 70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일제가 주장한 고조선 신화설, 한사군 한반도설을 고수하고 있다. 일제가 우리 역사를 말살하기 위해 날조한 이런 식민사관이 교과서에서 가르쳐지고 있는데 그 일차적인 책임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있다고 본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그 이듬해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사를 편찬할 전담 기구로 국사편찬위원회 전신인 국사관을 출범시켰다. 이때 초대 국사관 관장으로 신석호가 발탁되었다. 신석호는 이병도와 함께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으로 있었던 인물이다.
조선사편수회는 일제가 한국 침략과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한국사를 타율적이고 정체된 역사로 왜곡하기 위해 당시 일본과 한국의 식민사학자를 동원해 만든 총독부 직속 기관이다. 회장직은 정무총감이 겸임하고 이완용 등이 고문을 맡았다.
조선사편수회에서 편수관으로 한국사 말살에 참여했던 신석호가 광복 후 1946~1949년까지 3년간 국사관의 초대 관장을 맡았고 1949~1965년까지는 문교부 장관 겸직으로 관장에 재직했다. 일본 총독부 조선사편수회 편수관 출신이 거의 20년 동안 대한민국 국사관의 초대 관장을 맡아 한국사 연구의 초석을 놓았으니 한국사가 식민사관의 연장선상이 되었을 것은 당연하다. 광복 70년이 되었는데도 한국사 교과서가 일제 식민사관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국사편찬위의 인적 구성을 보면 고대사 분야에 김정배, 노태돈, 이기동 3인이다. 김정배는 신석호 제자로 고려대 교수를 역임했고, 노태돈은 이병도의 제자로 서울대 교수, 이기동 역시 이병도의 제자로 동국대 교수다. 조선사편수회 출신 신석호와 이병도의 인맥이 현재 국사편찬위의 위원으로 포진해 있다.
지난 70년 동안 이병도, 신석호 계열의 조선사편수회 학파가 국사편찬위의 주도권을 장악해왔다. 이런 국사편찬위에 오늘 국사 개편의 책임을 맡긴다면 고조선은 신화요 한사군은 한반도 안에 있었다는 조선사편수회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반영한 국사교과서가 또다시 만들어져 나올 것이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기대하기 어렵다. 제3의 기구를 구성하는 것이 차제에 식민사관을 청산하고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현명한 방법이다.
그리고 현 국사편찬위원장인 김정배 교수는 지난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논란의 핵심은 근대사 100년으로 한정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는 현재의 국사교과서가 근대사 100년만이 문제이며 고대사 관련 기록은 현행대로 두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그의 역사관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런 역사관을 가지고 국사교과서 개편을 맡아 추진한다면 고대사 분야는 현재의 복사판이 될 것이 뻔하다.
지금 올바른 국사교과서 개편 논의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는 국정이냐 검정이냐가 아니다. 역사를 보는 눈, 즉 올바른 역사관이다. 중국의 눈으로 우리 역사를 보는 사대사관, 일본의 눈으로 우리 역사를 보는 식민사관이 아니라, 우리 눈으로 우리 역사를 보는 올바른 역사관을 지닌 인물을 찾아서 별도 기구를 구성하여 이 역사적인 대업을 맡겨야 한다.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역사학 박사)
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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