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는데….”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 한국 주부들이 흔히 사용하는 ‘영리한’ 인사말이다.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면 “음식 맛에는 자신 있는데, 당신 입맛에 맞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쯤 될 터이다.
음식 만드는 것을 요리라 하는데, 한자 뜻 그대로 풀면 ‘헤아려 다스리다’라는 의미다. 재료의 종류와 분량, 배합 순서, 불의 세기와 가열시간, 조리도구의 종류 등 온갖 요소가 음식 맛을 결정한다. 이 모든 요소들을 만드는 사람 나름의 방식으로 조합시키는 창조적인 일이 요리다. 당연히 같은 이름의 음식이라도 똑같은 맛을 가질 수는 없다. 게다가 음식 고유의 맛과 그걸 느끼는 입맛은 별개다. 한 냄비에서 나온 음식을 두고도 사람에 따라 반응은 각색이다. 입맛도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으며 변하지만, 가장 강력한 요인은 맨 처음 익숙해진 맛, 즉 ‘어머니의 손맛’이다.
인류는 문화권에 따라 서로 다른 음식 종류를 개발하고 전승해 왔는데, 아주 오랫동안 요리법은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전승되었다. 문자로 요리법을 기록해 전승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이었다. 서로 다른 음식 문화권 사이의 교류가 확대되고 조리 설비와 도구가 변화하여 새로운 요리가 속출한 뒤에야, 요리법을 문자로 기록해 전달하는 일이 흔해졌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책은 1459년께의 필사본인 <산가요록>(山家要錄)이며, 1899년에는 <서양요리법>이라는 번역서가 발매되었다. 192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의 요리 전문잡지가 수입 판매되는 한편 신문지면에 요리법이 실리기 시작했고, 1929년에는 여자전문학교에 요리 강좌가 개설되었다.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가정이 요리책 한두 권 정도는 갖추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춘 요리책만 유일하게 올바른 것이니 다른 요리책들은 다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미쳤다는 소리밖에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으니, 기막히고 한심할 따름이다.
전우용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