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의 해나 오후 3시의 해나 하늘에 떠 있는 높이는 같다. 하지만 하나는 뜨는 해, 하나는 지는 해다. 2013년 1월 일본 민주당의 가이에다 반리 대표가 당의 처지를 이에 비유해 말한 적이 있다. “창당 때는 오전 8시, 9시의 태양, 지금은 오후 2시 무렵의 태양이다.”
일본 민주당은 전달의 중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230석이던 의석이 57석으로 줄어 역사적 정권교체를 이룬 지 3년3개월 만에 존재감 없는 야당으로 추락했다. 이때를 가이에다 대표가 ‘오후 2시’라고 본 것은 너무 낙관적이었던 것 같다. 6개월 뒤 참의원 선거에선 44석 가운데 겨우 17석을 건졌다. 12월 중의원 선거에선 당 대표가 낙선했다.
이런 부침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심판론에 힘입어 2004년 4·15 총선에서 47석이던 의석이 152석으로 늘어났던 열린우리당의 길과 많이 닮았다. 열린우리당의 뒤를 이은 제1야당 통합민주당은 4년 뒤 총선에서 81석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128석으로 늘어난 새정치민주연합의 시계는 몇 시일까?
여론조사 전문회사인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정당 지지도 격차는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새누리당 지지도는 더는 잘 떨어지지 않는 강력한 지지선이 40%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넘기 어려운 저항선이 30%다. 정부의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는 지금도 새정치연합의 지지도는 27%에 머물러 있다.
‘나라를 운영할 능력’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때문임은 스스로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집권 경험이 적고, 집권 때 국가 운영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정당이 그런 약점을 뛰어넘으려는 의지마저 없는 듯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불안한 일자리, 빈곤의 확산, 주거비 폭등에다 경기침체 장기화 조짐마저 뚜렷한 상황에서 야당의 정책 대안이 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정책을 내놔도 사람들의 가슴에 와닿지 않는 공허한 말로 끝났기 때문일 것이다. 1997년 말 대선에서 사상 첫 정권교체는 외환위기로 많은 이들이 집권당에 등을 돌린 데 힘입은 바 크다. 그런 위기가 재발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런 일로 정권이 또 바뀔 것 같지도 않다. ‘다 도둑놈’이라는 정치 불신의 물귀신 작전을 넘어서는 것조차 지금의 제1야당에는 벅차 보인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빌 클린턴이 선거운동본부에 ‘바보, 문제는 경제야!’라고 내건 일은 유명하다. 당시 미국 경제는 1980년 이래 최악이었다. 하지만 클린턴의 이 구호는 빤한 네거티브 전략이 아니었다. 클린턴은 부유층에 세금을 더 매기고, 교육과 수송·통신 분야에 재정 지출을 늘리겠다고 했다. 이 분야가 국가의 생산력을 활성화하고 경제성장을 이끌고, 재정 적자를 줄일 것이라고 설득했다. 또 보건·복지에 정부가 더 많이 개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유권자에게 판 것은 집권세력에 대한 조롱이나 비난이 아니라, 진지한 대안과 그에 기반한 희망이었다.
견제와 저항에서 존립 근거를 찾는 정당은 ‘만년 야당’을 면하기 어렵다. ‘저항 품앗이’로 뭉친 사람들은 타협하는 훈련이 잘돼 있지 않아서 사소한 이견으로도 흩어지기 쉽다. 정치란 이해관계의 조정이다. 집권 의지를 가진 정당이라면, 얼굴을 붉히는 일이 있더라도 잠재적 지지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견이 드러나게 하고 타협을 일궈냄으로써, 폭넓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대안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작은 사안부터 큰 틀까지. 그런 일은 좌클릭·우클릭 따위 탁상공론과 달라서, 잘하려면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있어야 하고 때론 욕먹을 각오도 해야 한다. 지금 새정치연합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정남구 논설위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