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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전화기

등록 2015-11-16 18:38

1896년 11월7일치 <독립신문>은 인천재판소가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를 살해한 김창수를 교수형에 처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의 사형 집행은 고종의 특별지시로 유예되었다. 후일 김구로 개명한 당시의 사형수는 고종이 직접 인천감리서에 전화를 걸어 자기를 살렸다고 기록했다. 이에 대해 서울-인천 간 시외전화가 개통된 것이 1900년이라는 점을 근거로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가 있으나, 궁내 전화가 놓인 것이 1893년, 개성부와 궁중 사이에 관용 전화선이 놓인 것이 1895년 4월이었으니 김구의 기록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고종이 직접 전화를 했는지, 다른 사람을 시켜 했는지는 확언할 수 없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사람이 전화기에 대고 처음 한 말은 뭐였을까? 처음 놓인 전화선이 궁내부와 각 관청을 연결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전화받는 사람은 먼저 전화기에 대고 절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이니, 분명 ‘여기 보세요’라는 뜻의 “여보세요”는 아니었을 것이다.

새 물건이 들어올 때는 기능적 사용법만이 아니라 문화적 사용법까지 함께 들어오는 게 일반적이다. 전화기는 대문을 여닫는 의례 없이 타인의 목소리를 불쑥 방 안으로 끌어들이는 기계다. 당시 대문을 사이에 두고서는 대개 “이리 오너라”와 “뉘신지요?”라는 말이 오갔다. ‘이리 오너라’를 가벼운 공대로 바꾼 것이 ‘여보세요’이니 전화 건 사람이 이리 말하는 건 자연스럽다 할 수 있으나, 받는 사람까지 이러는 건 아무래도 일본인들의 ‘모시모시’를 받아들였기 때문인 듯하다.

1910년대까지 집안에 전화기를 들여놓은 사람들은 부호가 아니면 의사나 기생 등 언제고 남의 ‘부름’에 응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전화기는 쌍방향 대화를 매개했지만 본질에서는 호출기계에 가까웠다. 현대의 한국인들은 시도 때도 없는 호출과 즉각적인 응답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여보세요”라고 말한다. 전화 통화할 때만.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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