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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의대생 고은산씨에게 / 김양중

등록 2015-11-24 18:55

지난주 국외 출장을 다닐 때 우연히 인터넷에서 현재 의대에 다니고 있다는 고은산씨가 쓴 글을 담은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은산씨는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 근처에서 열린 시위에서 ‘끔찍한 광경’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집회에 참여했던 한 청년이 넘어져 팔을 다쳐서 주변 사람의 구급차를 불렀던 모양입니다. 구급대원들이 이 청년을 싣기 위해 구급차의 뒷문을 열 때 경찰은 이 차를 향해 물대포를 1분 넘게 쏘았다고 했습니다. 은산씨는 이와 같은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집회 현장은 항상 의료의 사각지대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경찰이 (집회) 현장에서 구호 활동을 방해한 것뿐만 아니라 이를 공격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라고 적었습니다. 들것에 실린 환자와 이를 호송하고 치료하는 의료인을 공격하는 것은 전쟁터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은산씨는 의료의 윤리와 양심이 짓밟힌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되어가는 동안 의사단체들이 어떤 논평이나 보도자료 하나 내지 않은 채 침묵하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은산씨는 또 의사 선배들에게 의료의 존엄을 위해 행동하자고 주장했습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도 나와 있듯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의사는 최선을 다해 의술을 펼쳐야 한다고 말이죠. 아울러 집회 현장에서 경찰과 시위대를 포함한 모두가 (혹시라도 부상을 입으면) 신속하고 알맞은 응급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마련하도록 요구하는 데에도 함께하자고 했습니다.

은산씨의 글은 의사가 가져야 할 덕목에 비춰 보면 틀린 점이 없었습니다. 저도 의과대학을 다닐 때 의사는 어떤 환자도 차별하지 않고 진료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은산씨가 말한 의사 선배들을 제가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현직 의사도 아니지만 의대를 졸업한 한 사람으로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14일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아 넘어진 뒤 혼수에 빠져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농민 백남기씨의 소식을 들은 뒤라 더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가 지금까지 아무런 논평을 내지 않았다고 해서 희망을 잃지 맙시다. 제가 아는 바로는 사람의 생과 사를 다루는 의사들은 진료 현장뿐만 아니라 역사의 중요한 현장에 자주 서 있으면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묵묵히 해냈습니다. 군사독재로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인 1987년 경찰에게 물고문을 받다가 숨진 박종철씨의 사망 원인을 담담하게 밝힌 이도 역시 의사였습니다. 그가 없었더라면 그냥 ‘쇼크사’로 알려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숨진 박종철씨의) 사인이 엉터리로 조작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직업적인 양심이랄까”라고 말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후 1987년 여름 많은 의사들은 가운을 걸친 채 진료실이 아닌 거리에 나서 민주화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14일 집회 현장에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던 의사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머리가 깨진 환자의 상처를 치료하고, 붕대를 감고, 눈에 캡사이신을 맞은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이들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넘어 비뚤어진 우리 사회를 치유하고자 이곳 집회 현장까지 달려갔습니다. 현재 혼수상태인 백남기씨를 진료하고 있는 서울대병원 의료진도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또 다른 나라의 전쟁터에서, 그리고 에볼라가 창궐하는 서아프리카 등에서 진료를 한 의사들도 있습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어쩌다 보니 변명 같은 글이 돼 버렸네요. 부디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좋은 의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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