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5년, 북극해를 탐험하던 영국 탐험대 129명 전원이 사망했다. 주된 사인 중 하나는 비타민C 결핍에 따른 괴혈병이었다. 하지만 원주민인 이누이트족은 채소를 먹지 않아도 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 최근 미국, 영국, 덴마크 학자들로 구성된 공동연구진은 이누이트족에게서 지방대사와 관련된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진화란 더 완전하거나 더 균형 잡힌 어떤 상태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합하도록 변화하는 것임을 재확인한 셈이다.
목축을 핵심 생업으로 삼은 지역 사람들은 오랜 세월 우유와 버터·치즈·요구르트 등 우유 가공식품들을 만들어 먹었으나 한반도에는 그런 식문화가 없었다. 왕위 계승자들이 원나라에서 인질 생활을 하던 고려 말에야, 왕실에 우유가 침투했다. 이 무렵 정부 기관으로 젖소를 기르는 유우소(乳牛所)가 설치되었는데, 조선왕조 개창 이후에는 서울 낙산 아래로 옮겼다. 우유와 쌀을 섞어 끓인 타락죽은 왕실과 양반가의 보양식으로 취급되었으나, 모두가 즐기는 음식은 아니었던 듯하다. 1749년 어미 뒤를 따르는 송아지를 본 영조는 앞으로는 타락죽을 올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송아지를 불쌍히 여긴 마음이 없지는 않았겠으나, 입맛에 맞지 않은 탓도 있었을 것이다.
개항 이후 한국에 들어온 서양인들의 향수를 자극한 대표적 물질이 우유였다. 버터나 치즈는 장거리 이동이 가능했지만, 우유는 그렇지 못했다.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서양인에게 우유를 팔기 위해 젖소를 길렀다. 서양 문물 도입에 열심이던 <독립신문>은 1897년 ‘애 낳은 지 7개월이 지난 뒤에는 유모의 젖을 먹이지 말고 우유와 쇠고기로 조린 국’을 먹이라고 권유했다. 그럼에도 이후 수십년간, 한국인들은 우유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맛은 둘째 치고 우유를 먹으면 설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인들이 먹는 수많은 가공식품에 우유가 들어간다. 우유는 한국인의 체질을 세계인의 체질로 바꿈으로써 음식문화의 경계를 허문 물질이다.
전우용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