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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식당 풍경

등록 2015-12-02 18:37

집 앞 24시 콩나물해장국 집에 가서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다. 밤새 원고를 쓰면 술도 안 마셨으면서도 해장이 하고 싶어진다. 보글보글 끓어넘치는 뚝배기가 내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 두리번거렸다. ‘콩나물의 효능’이 커다란 벽면을 채우며 설명되어 있다. 한쪽엔 곁들여서 팔고 있는 모주에 대한 설명도 곁들여 있다. 그 문장만 읽고 있자면, 콩나물만 먹어도 만병을 치료할 듯한 느낌이 든다. 어느 식당을 가도 비슷한 문구가 커다랗게 벽을 차지하고 있다. 청국장을 파는 식당은 청국장에 대해, 곤드레 비빔밥을 파는 곳은 곤드레에 대해. <동의보감>이 주로 출처로 인용된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얼마나 이로운지 잘 알고 감사히 먹는다. 그렇지만, 감사함보다 더한 이상한 상실감이 있다. 단지 미각에 의한 쾌락으로 음식을 먹고 싶은데, 그걸 방해받는단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티브이를 틀어도, 건강에 대한 전문 지식을 알려주는 각종 쇼프로그램이 범람한다. 어떤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잘 알게 되어 반갑지만, 그 많은 정보를 기억해서, 그 많은 음식들을 모두 먹고 살 수는 없다. 많은 병에 노출된 채 살 수밖에 없고, 전염병이 가장 강력한 두려움 중 하나가 된 형편이지만, 이 넘쳐나는 정보들은 건강 염려증을 또 하나의 질병으로 조장하는 것은 아닐까. 빈 벽을 빈 벽으로 그대로 둔, 자그마한 식당에서 행복하게 밥을 먹고 싶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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