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 그물] 엄마. 나야.

등록 2015-12-07 18:50

울면서 웃는다. 이승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가 주인공인 생일모임을 할 때마다 바늘로 찔리듯 그 말을 경험한다. 1년 넘게 안산 ‘치유공간 이웃’에서 단원고 희생 학생들과 그런 시간을 보냈다. 생일날 부모형제, 친구, 선생님, 가까웠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아이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얘기하며 많이 울고 때론 웃는다. 모임 마지막엔 시인이 아이의 육성으로 보내준 생일시를 함께 낭송하는데 끝까지 제대로 읽은 적은 드물다. 약조한 바도 없는데 생일시의 첫 문장이 ‘엄마’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시인들은 아이들의 생전 마지막 말이 아마 엄마였을 거라는 생각에 첫 문장을 ‘엄마’에서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부모들이 자기 목에 칼을 겨눈 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건 안전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건 부차적이다.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그걸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이담에 아이를 만났을 때 ‘우리가 왜 절벽 같은 이별을 했는지’ 정도는 얘기해줄 수 있어야 부모라고 생각해서다. 그 당연한 일이 이렇듯 끔찍한 과정일 줄이야. 국가권력의 몰염치와 무정함이 이런 정도일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 못했다. 그런 상황이라서 아이들을 기억하고 보듬는 일은 복면을 쓰고 거리에 나가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기억투쟁이다. 이웃의 생일모임이 시작된 이유다.

부모들은 이젠 만질 수조차 없는 내 아이에게 ‘잘 있다’는 말 한마디만 들을 수 있으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고 토로한다. 생일시는 아이의 그런 육성이다.

당대의 빼어난 시인들이 단지 위로의 차원에서 별 고민 없이 그런 시를 썼을 리는 당연히, 없다. 생일시를 쓰는 시인들 대부분은 신내림 받는 무당처럼 앓았다. 사진을 보며, 때론 안산을 오가며 아이가 자기 몸 안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노라 했다. 호흡이 엉키고 침 삼키는 방법이 기억 안 나고 근육통이 생겼다. 혹시 저세상에서 아이가 시인에게 ‘당신이 뭘 안다고 멋대로 내 목소리를 꾸며내느냐?’고 화를 내면 어쩌나 하는 공포에 시달렸다고도 했다. 아이의 마지막 순간이 어땠는지 뻔히 아는데 어떻게 아이의 목소리로 ‘잘 있다’는 말을 전하느냐며 머리칼을 쥐어뜯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아이가 바로 내 옆에 와 있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고 했다.

<엄마. 나야.> 이웃에서 생일모임을 한 단원고 아이들 34명의 시선으로 쓰인 육성 생일시 모음 시집이다. 부제는 ‘그리운 목소리로 아이들이 말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시인들이 받아 적다’. 부제에 시인 34명의 마음이 오롯이 담겼다. 그건 곧 우리도 아이들의 엄마이고 아빠라고 생각하는 세월호 공감자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엄마. 나야.>는 보통 시집의 두 배 정도 분량인데 가격은 그 절반이다. 이 시집엔 인세가 없다. 인쇄소 사장도 인쇄비를 안 받는다. 책값을 최대한 낮춰서 더 많은 이들에게 아이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한 가열찬 연대다. 여기에 실린 시들은 단순한 문학적 성취가 아니라 지금은 세상에 없는 아이들의 육성이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해진다.

며칠 전 지인의 5살 딸아이가 자다가 깨서 엄마 품에 폭 파고들며 그러더란다. 엄마 몸은 내 집이야. 지금도 아이들이 ‘엄마. 나야’ 하고 말을 거는 건 그런 까닭일 것이다.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오늘은 세월호력으로 602번째의 4월16일이다. ‘엄마. 나야’ 하고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끝날 수 없다. 그런 목소리가 계속되는 한 이 싸움은 결국 이기는 것으로 끝난다. 간절하고 다정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꼭 들어봐 주시기 바란다. 천천히. 오래.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 대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