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울 시전 중에는 찢어지거나 해진 옷을 파는 파의전(破衣廛)이 있었다. 여기에서 팔린 헌옷은 아이 옷이 되거나 다른 옷을 깁는 천이 되거나 끈이 되거나 걸레가 됐다. 걸레로조차 쓸 수 없어 버려지면 다시 ‘거지발싸개’가 되어 형체를 잃을 때까지 사용되다가 흙의 일부가 되었다.
옛 산성 터로 알려진 곳에 올라가면 예외 없이 깨진 기왓장이나 질그릇 조각이 발에 밟힌다. 옛사람들이 성벽 주변을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이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것들조차 비상용 무기로 재지정됐기 때문이다. 성벽에 의지하여 단단한 물건을 아래로 던지는 전술이 임진왜란 중 행주산성 전투에서 처음 채택된 것은 아니다.
옛날의 ‘쓰레기’는 말은 있으되 그 실체는 흔치 않은 물건이었다. 금속은 다시 금속이 되었으며, 목재는 연료가 되었고 음식물 찌꺼기는 사료가 되었으며 분뇨는 거름이 되었다. 한 번만 쓰고 버리는 물건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자리잡기조차 어려웠다.
이 땅에서 ‘한 번만 쓰고 버리는 물건’을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10년 2월 일본인이 부산에 설립한 하치코절상박판할저제조공장(八縞折箱薄板割箸製造工場)으로 추정된다. 이 공장은 얇은 판자, 나무상자와 함께 오랫동안 와리바시(割り箸)라 불린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생산했다. 길쭉하게 가공한 무른 나무의 가운데를 5분의 4쯤 잘라 만든 이 일회용 나무젓가락으로부터 ‘일회용품’의 시대가 열렸다. 이후 이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사람은 급속히 늘어 1920년대 후반에는 목재가 풍부한 강원, 함경도 등지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소규모 제조공장도 여럿 생겼다.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 ‘불후의 신물질’들이 일회용품들의 주된 원료 물질이 된 뒤로 ‘불후의 쓰레기’들이 세상을 덮기 시작했다. 현대인은 한 번만 쓴 물건이나 아직 사용가치가 충분히 남은 물건을 버리는 데 익숙한 새로운 인류다. 지구의 관점에서 보자면, 현대인은 ‘불후의 쓰레기’를 대량생산하여 지구를 괴롭히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전우용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