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내년 총선이 아직도 석달 이상 남았지만 대구에서는 벌써 선거 열기가 뜨겁다. ‘대구의 정치’는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과 다르다. 여당과 야당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새누리당 내부의 경쟁, 즉 ‘그들만의 리그’이다.
대구선관위에는 벌써 예비후보 36명이 등록해놨다. 이 중 30명이 새누리당 공천을 노린다. 이들 대부분과 새누리당 현역 의원 12명이 모두 ‘친박싸움’에 나섰다. 선거공약이나 인물 됨됨이, 살아온 이력 등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누가 진짜 친박이냐를 가리는 데 관심이 쏠려 있다.
‘원박’(원조 박근혜), ‘진박’(진짜 친박), ‘신박’(새로운 친박), ‘짤박’(짤린 친박)은 한물간 신조어다. ‘강박’(강성 친박), ‘옹박’(박근혜 옹위부대), ‘복박’(돌아온 친박), ‘울박’(울고 싶은 친박), ‘수박’(수틀린 친박), ‘가박’(가짜 친박)까지 등장해 정신이 어지럽다. 이 판에 무소속이나 야당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벌써부터 “내년에도 새누리당이 대구 선거구 12곳을 모두 휩쓸 것”이라는 싹쓸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대구에서 싹쓸이의 역사는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2000년 4월 치러진 16대 총선부터 시작됐다. 당시 한나라당이 대구 선거구 11곳을 석권한 뒤, 이후 3차례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를 모두 특정 정당이 싹쓸이해왔다. 1960년대 야당도시로 이름을 날렸던 대구는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 때(1985년 12대 총선)도 선거구 6곳 가운데 절반을 야당이 차지할 만큼 야성이 강했다. 이랬던 대구시민들의 정치성향이 20여년 만에 크게 바뀐 것이다.
싹쓸이의 주역들은 무능하다. 선거다운 선거를 해보지도 않은 채 금배지를 단 탓에 실력이 없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는 대구시장 새누리당 후보 경선에서 친박 실세임을 뽐내는 3선의 서상기 의원과 재선의 조원진 의원이 이름이 덜 알려진 이재만 전 동구청장한테도 졌다. 대구 출신의 한 전직 국회의원은 “대구 경제가 침체에 빠져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은 새누리당의 독점과 관련이 깊다. 여야가 고르게 섞인 대전과 인천을 봐라. 우리보다 경제가 발전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싹쓸이는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다. 그들은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보다 청와대나 ‘정치보스’를 쳐다본다. 당선만 되면 지역구에 머물기보다는 곧바로 서울로 가버린다. 한해 동안 지역구를 한번도 찾지 않는 낙하산도 있다. 낙하산들은 지방대 졸업생들의 취업난, 지역경제 침체, 영남권 신공항, 케이투(K2) 공군기지 이전 등 대구시민들이 고민하는 현안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지역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싹쓸이 여파로 대구시장, 기초단체장, 대구시의회, 기초의회 등 모든 선출직이 새누리당 일색이다. 싹쓸이가 싹쓸이를 부른 셈이다. 지방의회의 중요한 역할인 집행부 견제는 아예 기대할 수조차 없다. 대구시의원 30명 중 29명이 새누리당이고, 8곳의 기초의회에서도 사정은 대동소이하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3선의 현직 기초의원은 “집행부 견제는 꿈같은 소리다. 모든 비리가 구청장·군수한테 몰려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구의원이 새누리당 구청장 비리를 거론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라고 털어놨다. 이런 모습은 대구와 경북뿐만 아니라 특정 정당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광주를 비롯한 전남·북, 부산과 울산, 경남 등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의 싹쓸이가 중단된다면 영호남의 정치지형도 따라서 바뀔지 모른다.
구대선 영남팀 기자 sunnyk@hani.co.kr
구대선 영남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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