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인의 어머니 장례식장에 갔다. 84살 어머니는 몇년 전 은퇴자아파트에 들어가 이내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뒤 후유증을 앓았다고 한다. 차츰 운동신경과 근육 마비가 확대되고 혈관성 치매도 생겼다. 마지막 1~2년은 침대를 못 벗어나고 24시간 간병인 돌봄을 받았다. “마음의 준비를 꽤 했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닥치니 아니더군요.”
2주, 특히 마지막 사흘이 힘들었다. 중환자실에서 병실로 내려온 이후, 예순이 넘은 아들은 하나하나 선택을 해야 했다. 추가 심폐소생술을 할지, 튜브 급식, 항생제 투여를 계속할지…. 어머니의 마지막을 앞당긴다는 부담감이 그를 짓눌렀다. “왜 사람들이 최종 결정을 그냥 의료진에게 맡기는지, 그래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는지 알겠더군요. 자신이 결정하고 감당할 힘이 없는 거죠.” 그는 “어머니 손을 잡고 저승 입구까지 한발한발 함께 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실 제3자의 ‘존엄사’를 말하는 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스페인에서 안락사 논쟁을 일으켰던 실화를 그린 <씨 인사이드> 같은 영화를 보며, 존엄한 죽음의 권리를 가로막는 데 분노하는 것도 이성적으론 가능하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할 때, 그 무게를 나의 ‘이성’이 감당할 수 있을까.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본격 논의되며 우리에게 이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사회적 계기가 열리고 있다.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2년 유예를 거쳐 시행될 이 법은 말기환자를 포함하는 서구와 달리, 임종과정 환자에게만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투여 등을 하지 않을 수 있게 했다. 의사가 환자 뜻을 확인해 작성한 연명의료 계획서나 환자가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가 없을 경우, 가족 2명이 환자의 뜻을 알려주면 된다. 평소 뜻을 모를 경우 가족 전원의 합의로도 가능하다. 일부에선 자칫 치료를 쉽게 포기하거나 가족들이 죄책감을 평생 안을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한다. 호스피스 전문기관도 전국 60곳, 1009병상에 불과해 법이 남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죽음은 더 이상 기피할 논의 대상이 아니다. 실제 인류가 이런 터부를 갖게 된 역사도 그리 길지 않다. 19세기까지 비교적 자유로웠던 죽음에 대한 논의는 “2차 대전 이후 의료기술의 진보와 함께 병원의 밀실에 갇히게 됐다.”(알폰스 데켄,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한국은 5년마다 발표되는 ‘죽음의 질’ 평가에서 병원이나 의료진 숫자 덕에 32위에서 18위로 최근 올랐지만, 완화치료 비율은 여전히 낮으며 아프면서 생을 마감하는 기간도 상대적으로 길다. 의사 아툴 가완디가 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는 주민들이 생의 마지막 시기 들이는 병원비나 입원 날짜가 미국 평균의 절반인 위스콘신주 라크로스 사례가 나온다. 이곳은 일찍부터 삶의 마지막 시기 원하는 바를 대화하고 문서화하는 캠페인을 펼쳤는데, 가완디는 “설문지 자체가 아니라 중환자실에 가기 전 여러번 환자와 가족들이 이야기하고 생각을 해봤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얼마 전, 남편과 각각 온라인으로 사전의료의향서 신청을 했다. 의향서 작성은 단순히 치료 선택이 아니라 삶의 끝이 보일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을지를 떠올리게 하는 과정이었다. 고통을 덜 받되 아이들을 알아볼 정신은 잃지 않고 싶으니 모르핀은 고려,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약물은 거부 등등. 지난 수년간 14만여명이 의향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아직 다른 사람들의 작성까지 강권하진 못하겠지만, 그 어려운 선택을 가족들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그러니 지금, 나부터 서명한다면.
김영희 사회 에디터 dora@hani.co.kr
김영희 사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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