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3일 마지막 국정연설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한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일 수 있으나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 또는 외면하려는 태도로 읽힌다. 북핵은 이제 말조차 꺼낼 대상도 안 된다는 것인지 놀라울 뿐이다.
북핵 문제가 발생한 지 거의 한 세대가 지나고 한반도 긴장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엔 여전히 미국이 해결해줄 것이라는 미국 의존증이 은연중에 퍼져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미국이 과연 북핵 해결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 대외정책의 결정 요인이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두 가지만 말하고 싶다. 첫째는 미국 대외정책의 최종 목표는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를 위한 최선의 방책은 아시아·유럽·중동 등 각 지역에서 미국의 지위를 위협할 만한 존재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미국은 1930~40년대 일본·독일의 역내 국가 침략, 소련과의 냉전 등의 경험을 통해 지역 강국이 팽창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진주만을 공격당하는 일을 겪었고, 히틀러의 유럽 침략으로 핵심 무역파트너들과 단절될 위험에 직면한 바 있다. 이에 대한 미국의 해법은 역내 대항마를 키워 세력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도 세력균형론적 정책을 펴왔다. 1930년대 일본 견제를 위해 중국의 분할통치에 반대했고, 1950년대부터는 소련·중국 봉쇄를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추진했으며, 1970년대는 소련의 팽창을 견제하고자 중국과 국교를 수립했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중국 견제가 지상 목표가 됐다. 이를 위해 일본과의 안보동맹을 강화하고, 한국까지 삼각 안보동맹으로 엮으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북핵 문제는 후순위로 밀려나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 견제에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실제로 미국은 2010년께부터 중국에 북한을 압박하지 않으면 북핵 억지를 위해 동북아에 군사력을 강화하겠다고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미국의 의도를 아는 중국이 북한을 버릴 수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동북아의 군비 경쟁뿐이다.
둘째는, 미국은 대외정책에도 민주주의적 결정 과정이 개입된다는 점이다. 미국 대통령은 대외정책을 결정할 때 국내 정치적 이해득실을 많이 따진다. 북핵 협상 같은 반대 목소리가 높은 의제는 추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 의회의 영향력은 대외정책에서도 막강하다. 그러다보니 방산업체 같은 이익단체 또는 다른 국가들이 의회에 로비를 하게 된다. 로비력에 따라 대외정책이 좌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란·쿠바의 경우 해당국 지도자의 대화 의지도 있었지만 미국 안팎에서 협상 지지파의 목소리가 많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개방경제인 이란은 원유 금수 조처로 피해를 입는 경제주체들이 많았다. 쿠바는 쿠바 이민자들의 국교 재개 요구가 많았다.
그러나 북한은 이와 다르다. 남한이 미국에 대화 압력을 넣을 수 있는 명분과 능력을 갖고 있으나, 오히려 보수정부 들어 대화를 방해하는 존재가 됐다.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미국에 대한 유일한 압박 수단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제는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 지경까지 왔다는 데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미국에 대한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현 국제 에디터 hyun21@hani.co.kr
박현 국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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