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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권노갑 탈당, 15년 전의 기시감 / 박찬수

등록 2016-01-14 19:12수정 2016-01-15 10:18

꼭 15년 전이다.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2001년 연초의 정치권은 동교동계 문제로 시끄러웠다. 연말에 재선의 정동영 의원이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동교동계 2선 후퇴’를 주장한 게 발단이었다. “사건만 터지면 여권 실세가 관련됐다는 얘기가 돈다”며 권노갑 최고위원의 전횡을 정면 비판한 건 당시로선 대단한 용기였다. 얼마 뒤 권 최고위원은 여론에 밀려 물러났지만, 새해 들어 정치활동 재개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그 무렵 권노갑 최고위원이 몰래 청와대에 들어와 대통령을 만나는지 체크하는 게 기자들의 주요 일과였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인사들에 따르면, 2001년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권노갑·한화갑씨를 청와대로 불러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말을 전할 게 있으면 박지원 비서실장을 통했고, 그래서 동교동계는 ‘박지원이 대통령 눈과 귀를 가린다’고 비난했지만 그게 대통령 뜻이란 걸 모를 리는 없었다. 그렇게 동교동계 가신들을 멀리하면서 김 대통령은 임기를 끝냈다. 당에선 ‘구태정치의 상징’으로 몰리고 대통령은 외면하는 상황을 보면서, 동교동계의 정치적 역할은 끝났다는 걸 느꼈다.

12일 권노갑 고문의 더불어민주당 탈당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15년 전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이유가 여기 있다. 그때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동교동계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중심에 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상황은 도대체 뭘까. 15년 전엔 ‘호남 물갈이의 표적’이던 권 고문과 동교동계가 이젠 오히려 제1야당의 패권적 행태를 비판하고 호남 민심의 풍향계인 양 언론을 장식하는 아찔함을 순간 느꼈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동교동계와 ‘호남정치 복원’을 꾀하는 천정배 의원, 그리고 ‘새 정치’를 외치는 안철수 의원까지, 선뜻 공통점을 찾기 힘든 이들을 이어주는 정치적 고리는 단 하나, 바로 ‘문재인은 싫다’는 호남 정서다. 15년 전 ‘개혁 대상’이던 권노갑 고문과 개혁을 주도했던 정동영 전 의원이 지금은 똑같이 제1야당을 떠나 어쩌면 같은 배를 탈지도 모를 처지에 놓인 것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다.

야당 지지기반의 핵심인 호남에서 과거 계파가 유령처럼 부활할 정도로 ‘반문재인 정서’가 강하다면, 그 책임은 문 대표 스스로 져야 한다. 열린우리당 분당의 쓰린 경험에도 불구하고 ‘김대중’과 ‘노무현’의 단결로 정권교체를 이뤄보자는 소망을 품었는데 그게 2012년에 실패로 끝나고, 그 뒤로도 계속 집권의 희망이 보이질 않은 게 도화선일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표로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문재인’이 싫다고 해서 자신의 손으로 세운 제1야당을 저렇게 흔들고 떠나는 동교동계의 행동이 결코 아름다울 수는 없다. 정치권을 명예롭게 떠났어야 할 노정객들까지 나서 ‘친노 패권’을 공공연히 거론하는 와중에서, ‘친노’와 ‘호남’은 양립 불가능한 세력으로 더욱 굳어져 버린다. 이제 야당 지지자들은 ‘친노’가 되든지 아니면 ‘호남정치’를 지지하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어느 한쪽 편에 서는 게 마뜩잖은 사람들은 쉽게 기권을 택할 것이다.

박찬수 논설위원
박찬수 논설위원
김대중 대통령이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에 경북 출신으로 군사정권 사람인 김중권씨를 앉힌 것이나,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내몬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을 승인한 걸 단순히 정치 전술로만 볼 수는 없다. ‘디제이 정신’이란 지역을 뛰어넘어 통합을 추구했던 가치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출신 지역이나 직접 모셨는지가 김대중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아니라는 아들 홍걸씨의 말은 옳다. 갈라설 거라면 ‘김대중’이란 치장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관련 영상] 인재영입, 더민주가 더 잘한다 /더 정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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