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 열풍이 불고 있다. 흘러간 과거의 것들이 현재라는 시간으로 불려나오고 있는 것이다. 복고 유행은 사회적 변화의 시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급격한 사회 변화는 현재를 낯선 시공간으로 만들어버리고, 그 속에 사는 이들로 하여금 유령이 된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쉽게 변화 이전의 과거에 빠져든다.
최근 <응답하라 1988>이 논란과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현재의 복고 유행을 이끈 주된 자극제였음이 분명하다. 이 시리즈는 두 번의 외환위기 이전 시기를 다루고 있다. 역사적으로 그 시기는 3저 현상에 힘입은 경제 호황기였고, 민주화와 가계소득 증가로 중산층의 소비문화가 꽃을 피웠던 때이다. 그런데 두 번의 외환위기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신자유주의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사회를 지탱하던 질서는 빠르게 변해갔다. 경쟁이 일상화되었고 사람들 간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 삭막하게 변해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정서적인 공감보다는 계산적이고 건조한 관계방식을 ‘쿨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응답하라 세대나 그보다 조금 앞선 세대에게 이러한 변화는 낯설다. 따라서 그들이 ‘응답하라’라는 자극에 화답하며 외환위기 이전의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변화 이전의 과거가 매력적이고 좋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쉽게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암울한 현재가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현재의 불안과 고통은 자주 과거로 눈을 돌리게 한다. 그때 과거는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시절로 지각되며, 자연스럽게 ‘그 시절이 좋았는데’, ‘그때는 이러지 않았는데’를 중얼거리게 만든다. 따라서 복고 열풍은 단순히 지나간 과거에의 찬미가 아니라, 현실이 위기상황에 처해 있음을 나타내는 징후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응답하라 1988>이 보여준 아름다운 쌍문동 골목길 풍경과 그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역설적이게도 미래를 꿈꿀 수 없는 현실, 이웃 간의 정이 사라진 현실, 더 이상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없는 현실이 부르는 진혼곡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응답하라’의 세계에는 이웃 간의 정과 행복이 둥지를 틀고 있다. 과거는 정말 그렇게 아름답고 행복했을까? ‘응답하라’ 시리즈는 하나의 상품이다. 이 매력적인 상품은 불쾌한 고통과 상처를 제거하고 행복과 사랑이라는 양념을 추가함으로써 과거를 소비하기 좋게 가공해 놓았다. 그 결과 불쾌와 위험을 동반했던 과거는 카페인 없는 커피나 무알코올 맥주처럼 안전한 것이 되었다. 오늘날 과거는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상품화되어 우리 앞에 주어진다. 해당 시절을 경험한 이들이 재현된 과거 앞에서 편안히 긴장을 풀고 향수에 젖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과거는 해당 시절을 경험한 이들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해당 시절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도 과거에 반응하고 열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이 그들을 열광하도록 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과거는 새로운 상품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그들은 향수에 바탕을 두고 과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에 기대어 새로운 상품으로서의 과거를 소비하는 것이다. 그들의 소비에는 추억이 없다. 단지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만이 있을 뿐이다. 이는 복고 열풍이 하나의 유행으로 나타난다고 해서 동일한 정서가 작동하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오창섭 건국대 디자인학부 교수
오창섭 건국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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