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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엑스선 촬영기

등록 2016-01-18 18:46

연산군 때 용하기로 소문난 홍계관이라는 점쟁이가 있었다. 소문을 들은 왕은 그를 궁궐로 불러들여 상자 하나를 내놓고는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맞혀보라고 했다. 잠시 점괘를 짚은 홍계관은 ‘쥐 네 마리’라고 답했다. 왕은 코웃음치며 “분명 한 마리뿐인데 네 마리라고 하는 걸 보니 혹세무민하는 놈이 분명하다. 당장 사형시켜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혹시나 해서 쥐의 배를 갈라 보게 하니 그 안에 새끼 쥐 세 마리가 있었다. 급히 형 집행을 중지시켰으나 홍계관은 이미 죽은 뒤였다.(한거잡록)

사물의 겉을 꿰뚫어 그 안의 내용물을 보는 능력인 투시력은 미래에 벌어질 일을 미리 아는 예지력과 더불어 신통력, 즉 신과 통하는 능력의 핵심을 이룬다. 동서고금에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투시력을 가졌다고 호언했으나, 절대다수는 사기꾼이었다. 인간이 실제로 투시력을 얻은 것은 1895년 뢴트겐이 엑스선을 발견한 뒤였다.

1910년 이광수가 지은 오산학교 교가 첫 소절은 “네 눈이 밝구나 엑스빛 같다. 하늘을 꿰뚫고 땅을 들추어 온가지 진리를 캐고 말련다”였다. 그 무렵의 신지식인들에게 엑스빛은 진리를 보는 눈 그 자체였다.

이 땅에 엑스선 촬영기가 첫선을 보인 해는 1914년으로 추정된다. 이해 5월, 조선총독부의원에서 배뇨장애가 있는 남녀 각 1명을 대상으로 엑스선 촬영이 진행되었다. 이 기계가 도립병원과 선교병원들에 자리잡은 것은 이로부터 10년쯤 지나서였고, 1930년부터는 개인병원들도 이 기계를 비치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초음파 진단기, 시티(CT), 엠아르아이(MRI), 펫(PET) 등이 엑스선 촬영기보다 더 정밀하게 사람 몸 ‘속’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고 찍어낸다. 이들 기계의 시선 앞에서 인간의 몸은 반투명이다. 그런데 마음은? 옛사람들은 마음이 심장 안에 굳게 자리잡고 있다고 믿었지만 현대인들의 마음은 반투명한 액체처럼 흘러다니는 듯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엑스선 촬영기가 책임져야 할 몫도 있지 않을까?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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