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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도량형기

등록 2016-01-25 18:55

현대인이 사용하는 물건들은 거의가 상품이며, 이들은 완성되기까지 몇 차례씩 도량형기를 거친다. 길이를 재는 자가 도, 부피를 재는 되가 량, 무게를 재는 저울이 형이다. 그런데 도량형이 나라마다 지역마다 제각각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질세계의 크기와 무게에 대한 통일된 감각은, 통일된 도량형기가 만들어진 뒤에야 생겼다.

고대 중국에서는 소리를 도량형의 기준으로 삼았다. 사물의 미세한 차이를 식별하는 데에는 귀의 능력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일 터이다. 같은 소리를 내는 피리는 재질이 같다면 길이와 두께, 구멍의 크기도 같다. 도량형의 기준이 되는 피리를 황종율관이라 했는데, 그 길이가 척(尺), 그 무게가 관(貫), 그 안에 들어가는 기장[黍]의 부피가 두(斗)의 기준이었다. 그런데 엄정한 기준을 만드는 것과 그를 지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우리나라도 중국의 도량형 기준을 채용했으나 자든 됫박이든 저울이든 오차가 허용되는 범위는 무척 넓었다. 19세기 이전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가 다 비슷했다.

1790년 프랑스 파리 과학학사원 특별위원회는 파리를 통과하는 자오선이 북극에서 적도에 이르는 길이의 1000만분의 1을 1미터로, 한 변의 길이가 10분의 1미터인 정육면체에 담긴 증류수의 무게를 1킬로그램으로, 그 부피를 1리터로 하는 미터법을 제정했다. 이 도량형 기준은 1875년의 미터조약으로 국제 기준이 되었다.

1902년 대한제국은 평식원을 설립하고 프랑스에서 백금과 이리듐의 합금으로 된 1미터짜리 길이원기와 1킬로그램짜리 질량원기를 도입해 도량형기의 표준으로 삼았다. 미터법의 기준은 1960년부터 방사선의 파장으로 바뀜으로써 지구의 크기와 결별했으나, 절대다수의 현대인은 이 단일한 도량형 기준으로 자신을 포함한 세계의 크기와 무게를 측정한다. 게다가 전자기기와 결합한 현대의 도량형기는 조금의 오차와 인정도 허용치 않는 냉엄함의 표상처럼 되었다. 하지만 남을 잴 때와 자기를 잴 때가 현격히 다른 ‘도덕성의 이중 잣대’는 옛날보다 현대가 더 심한 듯하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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