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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비비시와 엠비시 / 최원형

등록 2016-01-31 21:24

2000년 그레그 다이크가 영국 <비비시>(BBC)의 사장이 되었을 때, 거액의 정치후원금을 기부하는 등 노동당의 오랜 지지자라는 사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비비시의 정치적 독립성을 걱정했다. 그러나 앨러스테어 캠벨 같은 ‘스핀닥터’(여론조작 전문가)들을 앞세운 토니 블레어 정부는 다이크 사장의 비비시와 줄곧 사이가 좋지 못했다. 이라크 전쟁은 그 정점이었다. 2003년 5월 비비시의 국방 담당인 앤드루 길리건 기자가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영국 정부가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 관련 보고서는 선정적으로 과장됐다(sexed up)”고 밝히자, 정부는 비비시가 저널리즘 규범을 어겼다며 대대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길리건의 익명 취재원이 숨진 채로 발견되면서 파문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영국 정부는 대법관 브라이언 허턴에게 진상조사를 맡겼으나, ‘허턴 위원회’는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여론조작 의혹은 놔둔 채 비비시 보도의 허물들만 들춰냈다. 일부 실수는 있었지만 길리건의 보도는 전체적으로 정당했다고 강변했던 다이크 사장은 결국 개빈 데이비스 비비시 회장과 함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블레어 정부보다 다이크와 비비시를 더 지지했다. 비비시 직원 수천명은 거리로 뛰쳐나와 항의 시위를 벌였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정부보다 비비시를 믿는다는 압도적인 결과들이 나왔다.

 최근 <문화방송>(MBC) 경영진 핵심 인사의 발언이 알려져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내부 구성원들을 “증거 없이 해고”하고 “업무에서 배제”하는 데 그처럼 총력을 기울인 이유는 도대체 뭘까? 과거 ‘성역 없는 비판’으로 정권과 잦은 불화를 일으켰던 문화방송의 각종 보도, 고발 프로그램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내부 구성원의 비판 보도를 보호하려다가 자리까지 내놓은 비비시 경영진의 태도와는 여러모로 극단적인 비교가 되는 대목이다.

 최원형 여론미디어팀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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