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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화재경보기

등록 2016-02-01 19:01수정 2016-02-03 09:03

17세기 프랑스 사람 데카르트는 인간을 ‘영혼이 깃든 기계’로 정의했다. 유사 이래 수많은 철학자들이 한마디 말로 인간을 정의했지만, 기계 생산 시대의 인간에게 이보다 잘 어울리는 정의는 달리 찾기 어려울 것이다. 데카르트 시대를 대표하는 자동 기계는 시계였다. 때맞춰 태엽만 감아주면 쉬지 않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고장 나더라도 부품만 갈아주면 원상태로 회복되는 이 기계는, 인간을 닮았다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롤모델이었다. 데카르트가 누군지 몰랐던 우리 선조들도 생각은 그와 같아서 시계태엽 감는 걸 ‘밥 준다’고 했다.

그런데 시계는 ‘노동하는 동물’의 모델이 되기에는 충분했으나, 불규칙하고 비일상적인 사건들에 반응하는 ‘정치적 동물’의 모델로서는 부족했다. 시계에는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없다. ‘인간은 기계’라는 말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판단능력을 갖춘 기계가 있어야 했다. 이런 기계로 처음 만들어진 것이 자동 화재경보기다.

화재를 목격한 사람이 전기신호를 이용해 소방대에 알리는 화재경보기는 1852년 미국에서 발명되었는데, 한국인들이 이 기계를 처음 본 것은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장으로 사용된 경복궁에서였다. 온도 감지 센서가 부착되어 화재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고 경보하는 자동 화재경보기는 1890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1959년부터 자동 화재경보기가 판매되었고 1966년에는 이 기계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회사도 설립되었다. 그 뒤로 반세기, 지금은 거의 모든 대형 건물의 방마다 자동 화재경보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이밖에도 스스로 판단하고 작동하는 여러 종류의 감지·경보기들이 있다.

이런 기계들은 종종 잘못된 판단을 한다는 점에서도 사람을 닮았다. 다만 기계의 감지능력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지만 인간의 인지능력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전 국민이 단 한 종류의 원시적 위험 감지 센서에 따라 작동하는 국가라야 건강한 국가라고 믿는 전체주의의 유풍이 아직 수그러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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