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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축구와 인공위성 / 윤태웅

등록 2016-02-10 18:56수정 2016-02-10 20:44

서울운동장에서 열리는 축구시합을 집 안에서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저는 참 신기했습니다. 텔레비전 있는 집이 많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경기를 구경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선수가 골을 넣을 땐 온 동네가 들썩였지요. 남산에 있는 높은 탑을 통해 전국으로 전해진 축구 영상은 멋진 선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남산은 다른 나라에서 하는 시합을 중계방송하기엔 너무 낮았습니다. 신이 만든 세상의 산은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은 위성을 만들어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렸습니다. 축구에 꽂혀 있던 꼬마에게 인공위성은 지구 반대편 경기장의 모습까지 실시간으로 전송해주는 신통방통한 물건이었습니다. 꼬마가 어른이 된 지금, 인공위성의 도움을 받는 건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인공위성을 네 대 이상 활용하는 지피에스(GPS)가 없으면, 운전하다 길을 제대로 못 찾아 버벅거리기 일쑤지요.

인공위성을 궤도로 떠나보낸 로켓은 이후 바다로 그냥 버려집니다. 많은 노력과 돈을 들여 만들었지만, 온전히 회수할 방법이 없었던 탓입니다. 이때 추진 로켓을 재활용하겠다고 선언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SpaceX)입니다.

스페이스엑스는 여러 차례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지난해 6월29일에 발사했던 로켓은 회수는커녕 2분 만에 폭발한 바 있습니다. 그러다 2015년 12월21일, 마침내 소형 위성 11개를 팰컨9라는 로켓에 실어 궤도에 띄우고, 1단 추진 로켓을 지상으로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역사적 성취였습니다. 하지만 바다에 떠 있는 바지선에서 로켓을 회수하려던 원래 계획에 견주면 절반의 성공일 뿐이기도 했지요. 해상 착륙이 실현되면, 연료는 덜 쓰고 내용물은 더 실어나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성을 궤도에 올리고 사상 최초로 지상에서 로켓을 회수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2016년 1월17일, 스페이스엑스는 해상 착륙을 다시 시도합니다. 기상 관찰 위성은 무사히 궤도로 진입합니다. 한데 1단 추진 로켓을 회수하는 데는 또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자 일론 머스크는 로켓이 착지 과정에서 한쪽으로 기울다 쓰러지며 폭발하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립니다. 저는 그 동영상에서 일론 머스크의 자신감을 읽었습니다.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들여다봤으니, (바로 다음은 아닐지 몰라도) 곧 성공할 수 있으리라 말하는 듯싶었습니다. 과학과 공학 연구에선 실패도 소중한 성과입니다.

10여 일이 흐른 뒤인 지난 1월30일, 저는 인공위성으로 중계방송되는 아시아축구연맹 U-23 대회 결승전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두 골을 먼저 넣었지만, 일본에 내리 세 골을 내주었지요. 역전패가 꽤 섭섭했지만, 경기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앞서 있으면서도 더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은 시원스러웠습니다. 수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분석할 필요는 있겠지만, 졌다고 고개 숙일 이유는 전혀 없으리라 여겼습니다. 멋진 패배였습니다. 이른바 침대 축구로 승자가 되었다면 더 서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튿날, <[포토] 신태용호 ‘한일전 패배 죄송합니다’>란 제목의 기사(http://goo.gl/cNMZN4)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진 속에선 감독과 선수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안타깝고 불편한 장면이었지만, 아주 낯설진 않았습니다. 결과에만 집착하는 우리의 자화상 같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가 결과보단 과정을, 불성실한 성공보단 성실한 실패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그리되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나 궁극의 성공도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새로운 도전에 나설 사람들이 별로 없을 테니 말입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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