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전자우편으로 의료사고 제보는 끊임없이 온다. 얼마 전에는 “어머니가 병원
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받다가 사망했다. 오래된 관절염으로 무릎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병원에 걸어 들어가셨다가 수술받고 사망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특히 “수술 의사에게 사망 이유라도 들어보려고 찾아갔지만 아예 만나주지도 않아 병원 직원들과 몇번 말다툼을 하고 왔다”고 했다. 수술 의사와 병원 연락처를 남겨뒀길래 사실 확인차 연락을 해봤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었고 병원에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수술 의사와 연결해주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전하자 제보를 보낸 분은 “너무 억울해서 병원 앞에서 시위를 하든지 아니면 소송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선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중재신청을 내보는 것이 낫겠다고 전해 드렸다.
이후 이 제보자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병원의 태도를 보면 의료분쟁조정이 잘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법으로는 의료분쟁조정을 신청해도 의사나 병원이 이를 거부하거나 2주 동안 조정 중재에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조정신청이 각하되기 때문이다. 실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통계자료를 보면 지난해 접수된 사건 1691건 가운데 병원 등이 참여하지 않아 조정절차에도 들어가지 못한 건수는 942건으로 접수 건수의 55.7%나 됐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환자 및 시민단체들은 의료기관의 동의 없이도 조정절차가 시작되는 이른바 ‘신해철법’이라고 부르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을 주장했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17일 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앞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및 본회의를 통과하면, 의료사고로 사망하거나 중증 상해를 당한 환자와 가족들은 복잡한 소송보다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중재를 받게 된다. 환자단체 등은 병원 앞 시위나 법정 소송이 줄어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갈등도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계 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지난 18일 공동으로 성명을 내어 졸속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도 22일 이번 개정안에 대해 사상 초유의 의료악법이라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들은 원인과 관계없이 환자가 사망하거나 중증 상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치료를 한 의사가 준범죄자 취급을 받게 되는 개정안은 의사와 환자 사이의 불신만을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분쟁을 피하려고 치료가 까다로운 환자는 큰 병원으로 의뢰하거나 각종 값비싼 검사를 남발하는 등 방어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와 의사 사이의 갈등은 더 커질 거라는 얘기다.
양쪽의 입장 차이가 이토록 첨예하다 보니, 자칫 이번 개정안 통과로 갈등만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점 한 가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바로 의료사고 예방이다. 많은 의료사고는 현대의학의 한계가 원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병원의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력이 부족한 데에서 벌어진다. 잠이 부족할 정도로 긴 시간 노동을 하는 의사나 간호사가 실수로 주사를 잘못 놓거나 인공호흡기가 빠져 있는데도 이를 보지 못하는 사례는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의료통계를 보면 간호인력의 경우 우리나라가 회원국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최하위 수준이다. 또 입원 환자 수에 견줘 의사 수 역시 적다. 의료분쟁조정에 대한 갈등이 ‘사후 약 처방’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병원에서의 ‘환자 안전’을 위한 정책을 논의할 때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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