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유치하다. 헛웃음만 나온다. 선거판에서 낯뜨거운 ‘진실한 사람’ 찾기가 한창이다.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번져나가는 새누리당의 ‘진박 논란’ 이야기다.
지난 1월20일 아침, 대구시 남구의 한 식당에 붉은 점퍼를 입은 중년 남성 6명이 모였다. 이들은 “대구 국회의원들이 제구실을 못해 대구 경제가 이 지경이 됐다”고 목청을 높이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려는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 등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찍힌’ 대구 출신 새누리당 현역 국회의원과 맞붙어 싸울 ‘진박’들이다. ‘진박’은 친박 가운데 고르고 골라낸 ‘진짜 친박’이란 뜻이다. ‘진실한 사람’이란 의미도 담겨 있다.
현 정부의 실세 중의 실세로 꼽히는 최경환 의원은 ‘진박 감별사’로 통한다. 누가 진박인지 아닌지를 단박에 골라내는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최 의원은 진박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이들은 진박이 맞다. 확실하다”며 보증을 서고 인증샷까지 찍은 뒤 손을 맞잡고 지지해 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대구 민심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전국적인 관심이 쏠린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지역구에서는, 진박 후보인 이재만 전 청장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유 의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2월16일, <한국방송>(KBS)과 <연합뉴스>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42.8% 대 21%로 나타났고, 2월23일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55.8%와 27%로 차이가 더 벌어졌다. 진박 6인의 좌장 격인 정종섭 전 장관과 류성걸 의원, 김상훈 의원과 공천 경합에 들어간 윤두현 전 홍보수석도 지지율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진다. 대구 중·남구와 대구 북구갑에서는 진박 후보가 4~5위에 머물러 있다.
대구 시민들은 진박 후보들을 향해 ‘낙하산’이라고 부른다. 30~40년 만에 고향을 찾아와 “내가 진박이니까 표를 달라”고 호소해봐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정치적인 역량, 지역발전 공헌도, 공약 실천 여부 같은 걸로 새누리당 공천을 결정해야지, 진박이니 진실한 사람이니 하는 잣대는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물갈이는 꼭 필요하지만 이런 방법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대구에서 50여명이 출마했지만 소수의 몇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친박이다. 이제 와서 굳이 진박, 친박, 비박이니 해가면서 구별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가 드세다.
고전하는 진박 후보들을 당선시키려는 온갖 시나리오가 나돈다. 진박 후보와 맞싸우는 6곳에서 유승민 의원을 포함한 현역 의원 모두를 컷오프로 탈락시킨다는 소문이 그럴싸하게 나돌고 있다. 최근에는 유승민 의원을 떨어뜨리기 위해 친박 다선 중진들을 희생시키는 ‘논개작전’이란 듣도 보도 못한 비밀프로젝트가 준비 중이란 소문도 들린다.
‘새누리당은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4년 전 총선 때와는 대구의 분위기가 완전히 딴판이다. 대구에서 부유층이 몰려 사는 ‘수성갑 선거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예비후보가 새누리당 김문수 예비후보를 각종 여론조사에서 평균 15%포인트 이상 큰 차이로 앞서 달린다. 수십차례 걸친 여론조사에서 김부겸 후보가 한번도 져 본 적이 없다. 매우 이례적이고, 대구 민심이 변하고 있는 증거다. 새누리당이 대구 시민들의 뜻을 저버리고 무리하게 진박 후보 당선을 밀어붙인다면 민심이 폭발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구대선 영남팀 기자 sunnyk@hani.co.kr
구대선 영남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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