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연방대법관인 서굿 마셜(1908~1993)이 1991년 6월 사임을 발표했다. 흑인 민권운동가로서 대법원에서도 진보적 가치를 지키려 애썼던 그는 건강이 나빴는데도 민주당 출신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기를 바라며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사임 발표는 놀라운 소식이었다. 당시 대통령은 공화당의 조지 부시였다. 부시가 그의 후임으로 소수 인종 출신을 지명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아버지께서 예전에 말씀하시길, 흰 뱀과 검은 뱀은 차이가 없답니다. 사람을 무는 것은 똑같지요”라며 “잘못된 흑인”은 안 된다고 했다.
부시는 그의 후임으로 흑인인 클래런스 토머스를 지명했다. 토머스는 소수인종 우대 정책에 반대하는 등 가장 보수적인 견해를 내놓으면서 지금도 재직 중이다. 대법원 보수 진영의 지도자였던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이 “나도 원전주의자이지만, 미친놈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다.(<더 나인>, 제프리 투빈 지음, 강건우 옮김)
스캘리아가 갑작스럽게 숨지면서 후임 지명을 놓고 미국이 시끄럽다. 스캘리아는 지난해 6월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 때 낸 소수의견에서 “‘대표 없는 과세 없다’보다 더 근본적인 ‘대표 없는 사회변혁 없다’(No social transform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원칙을 위반한다”며, 미국 사회를 대표하지 못하는 대법원이 이런 판결을 해도 되는지 되물었다. 그러면서 대법관들이 모두 하버드대와 예일대 로스쿨에서 공부했고, 개신교를 믿는 판사가 한 명도 없는 점 등을 지적하며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를 촉구했다. 자신이 봐도 대법원 구성이 편협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서울대 법대 출신의 50대 남성 판사들로 대법원이 채워진다. 견해의 다양성은커녕 희고 검은 구별도 없는데도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황상철 국제뉴스팀장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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