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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개혁적 보수, 대중적 진보

등록 2005-10-23 17:00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5년 전 ‘동부의 기득권 세력’을 공격하며 당선됐다. 이른바 ‘워싱턴 정치’에 한번도 끼어보지 못한 것이 큰 장점이 됐다. 지난해 대선에서도 이런 주장이 어느 정도 먹혔다. 민주당 후보인 존 케리가 동부 기득권층의 이미지를 가졌던 탓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케리가 강경보수파인 부시로부터 그런 공격을 받았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결국 케리는 자신의 비전을 부각시키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반부시를 외치다가 졌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주요한 기준이 바로 기득권 세력에 대한 태도다. 보수는 기득권 세력을 유지해 나가려 하고, 진보는 새로운 권력을 구축하려 한다. 보수는 경험 있는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최선이라 여기는 반면, 진보는 권력의 기반을 크게 넓혀 국민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이 정의롭다고 본다. 보수는 엘리트를, 진보는 민주주의를 믿는다. 둘다 나름의 역사·철학·실천적 바탕이 있는 셈이다.

물론 현실이 말처럼 단순하지는 않다. 변화 속도는 빨라지고 사회 구조도 그만큼 복잡해진다. 정치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니, 지구촌 어디를 봐도 정치 불만이 그득하다. 보수든 진보든 새 길을 찾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우선 보수는 기득권층의 내부 구성을 끊임없이 바꾸고 수준과 책임을 높여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개혁적 보수’가 돼야 하는 것이다. 진보 또한 다양한 사회세력을 효과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시키는 새 틀 모색이 필수적이다. 각자 목소리만 높일 게 아니라 함께 질서 있게 나아가는 ‘대중적 진보’를 만들어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강정구 사건’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는 모두 그렇지 못하다. 보수는 여전히 한 세대 전에 만들어진 기득권의 유지에 집착한다. 논리도 인물도 비슷하다. 시대 변화에도, 국가 진로에도 맞지 않는다. 미래는 고사하고 현재도 책임지기 어려운 모습이다. 강 교수가 지사인 양 행세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 진보와 민주주의의 한 자락을 차지하려면 그에 걸맞은 언행이 뭔지 먼저 숙고해봐야 한다. 기득권 세력을 비판하더라도, 그 결과는 진보진영의 역량을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개혁하지 못하는 보수, 대중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진보는 탈락한다. 영국 보수당이 그렇고 독일 사민당이 그렇다. 부시 정권도 마찬가지다. 부시의 지지율이 최근 30%대까지 떨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 이후 부시 정권 자체가 완고한 기득권 세력임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50년간 보수정치 일변도였던 일본에서조차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은 개혁을 상표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 보수세력이 지난 대선에서 진 이유도 낡은 기득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 있다. 대선판에서 사실상 신인이었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자 보수세력은 스스로 반성하고 개혁하기보다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갔다. 지금 노무현 정권은 중도적이지만 보수세력으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다보니 진보로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개혁적 보수가 자라날 토양도 척박해진다. 길게 보면 보수 쪽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모양새다.

지금 보수와 진보는 모두 위기 상황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보수에는 개혁이 없고, 진보에는 중심이 없다. 나라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강정구 논란이 주는 무거운 교훈을 가볍게 넘기지 말기 바란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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