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 사람이다. 태생은 아니나 시민으로 산 지 반세기가 다 되어가니 서울 사람 아니겠는가. 오래 산 곳인 만큼 나는 서울에 대한 관심도 많다. 서울의 생김새나 역사성도 그런 관심사의 하나다.
사실 서울만큼 자연환경이 좋은 도시도 드물 것이다. 북한산과 도봉산, 청계산과 관악산 같은 명산을 자연성벽으로 삼고, 한강처럼 드넓은 강을 넉넉하게 품은 대도시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청년시절 처음 본 한강의 백사장은 빛났고, 북한산과 도봉산은 멀리서도 뚜렷이 보여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서울의 이런 생김새나 지세를 보면 한반도 역사의 주역들이 왜 수천년 전부터 이곳에다 위례성을 비롯한 도성과 도읍을 세웠는지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오늘날의 서울에서 역사성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조선의 도읍이 된 지도 600년이 훌쩍 넘어섰지만, 서울의 옛 모습은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자연풍경, 역사적 장소가 죄다 부동산 개발이라는 ‘창조적 파괴’의 희생물이 된 결과다. 북한산, 관악산의 청명한 모습은 이제 고층건물들 사이로, 그것도 맑을 때 가까스로 보이고, 하천의 빛나던 백사장은 개발의 불도저에 밀려 사라지고 말았다. 역사적 장소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나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도심 재개발로 종로의 피맛골이 파괴된 것을 무척이나 애통해한다.
서울에서 역사성이 사라진 것은 거기서 형성된 삶의 자취가 지워졌다는 말이다. 경복궁이나 창경궁 같은 고적을 보존해 고도 서울의 역사성을 지키려 한다면 오산이다. 그런 곳은 박제처럼 보존되고 전시될 뿐 삶의 역사적 체취와 궤적을 담아내지 못한다. 지금 서울은 ‘전통 공간’으로 치부되는 인사동이나 북촌 같은 데서도 역사의 온축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다. 이들 동네에 전통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상품의 모습을 띠고 있을 뿐이다. 이윤 논리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아무리 소중한 건축물이나 마을도 창조적 파괴, 즉 개발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서울은 거대한 난민촌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더러 있다. 난민촌이란 하루빨리 자리를 뜨고 싶은 곳이다. 서울만큼 사람들에게 뜨내기살이를 강요하는 도시도 없다. 2014년에 나온 서울연구원의 한 발표를 보면, 현 주택에서 5년 미만 살았다는 서울시민의 비율은 51퍼센트, 5년 이상 10년 미만 거주한 비율은 20퍼센트, 10년 이상은 29퍼센트였다. 자가인 경우 현재 주택에 평균 거주한 기간은 10년 정도였고, 반면에 전월세로 사는 경우에는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런 수치를 종합해보면 서울시민은 현재 거주 중인 주택에서 평균 4년 정도만 사는 셈이 된다.
서울의 역사성이 일천한 것과 시민이 4년에 한 번씩 집을 옮긴다는 것 사이에는 분명 인과관계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이사를 자주 하게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주택이 사람 살 집이 아니라 부동산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소유주가 주택을 거주 공간보다 자산 축적의 수단으로 사용하려 들면, 전월세에 사는 사람은 같은 집에 더 오래 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이 결과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뜨내기처럼 살아야만 한다. 서울이 난민촌처럼 된 것은 대부분의 시민이 4년 후면 훌쩍 떠날 동네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공식적으로 서울은 난민촌이 아니다. 그러나 시민이 4년에 한 번꼴로 이사를 하고 있는 도시는 군데군데 난민촌을 만들어낼 공산이 클 수밖에 없다. 이것은 천만 서울시민의 거주공간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서울에서 난민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서울이 고도의 모습을 회복하고, 자연스런 풍광도 최대한 되찾고,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서울 사람으로서 나의 바람이다.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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