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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속이 보이는가 / 정남구

등록 2016-04-06 19:31수정 2016-04-06 22:45

정부가 물가를 강력히 단속하던 시대에 기업들은 가격을 묶어 두고, 대신 품질을 떨어뜨려 대처했다. 1973년 10월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는데, 이듬해 언론 보도를 보면 카스텔라는 4분의 1 이상 두께가 얇아지고, 공책은 종잇장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소시지는 가늘어지고, 연탄은 키가 작아졌다.

문제는 소비자를 속이는 일이었다. 1980년대엔 내용물을 표시한 양대로 담지 않은 상품이 많아 불만을 샀다. 당시 정량 미달 허용 한도는 2%였는데, 1980년 소비자단체협의회가 400여개 품목을 조사했더니 다섯개 가운데 하나가 한도를 넘겼다. 90년대엔 농산물을 포장하면서 손님 눈에 보이는 위쪽엔 좋은 것을, 아래쪽엔 크기가 작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넣는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비슷한 사례가 아직도 흔하다. “돈 주고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안에 딸려 왔다.” 봉지 안에 질소를 넣어 부풀린 ‘질소 과자’ 탓에 지난해 퍼진 우스갯소리다.

한 편의점 프랜차이즈가 5일 ‘속 보이는 김밥’을 내놨다. 단면이 보이도록 눕히고 투명 비닐로 덮어, 소비자가 김밥 속 내용물을 확인하고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과대 포장, 연출된 사진과 다른 내용물로 인한 불만을 한방에 씻어낼 길을 투명성에서 찾은 셈이다. 김밥보다 먼저 투명 포장으로 바꾼 식품류는 매출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들어가라는 미국 정부의 요구를 거부하며, 카이오와족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나에 관해 거짓말을 한 일이 없지만 백인 대표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들도 나처럼 속이 훤히 보이는가?”(<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속 보인다’는 말은 이제 힐난이 아니라, 칭찬이 돼야 한다. 투명해야 신뢰가 쌓인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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