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가지 특권을 가졌다는 국회의원들이 ‘흙수저’ 청년들에게까지 고개를 조아린다. 선거는 선거인 모양이다. 평소엔 ‘고용에의 악영향’ 따위를 들며 난색을 보이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모든 정당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뒤 가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점점 과감해지는 공약들을 보노라면 선거가 임박했음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이 ‘코스프레’가 곧 막을 내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찍이 장 자크 루소는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오직 선거일에만 주인이 된다”고 적절히 갈파했다. 선거라는 게 고작 이런 것이었던가.
2012년 대선에서 여야 모두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제민주화’가 이번 총선을 앞두고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간 서민들은 경기침체에다 양극화 심화, 치솟는 전월세 값, 극심한 청년실업 등으로 몸과 마음에 큰 멍이 들었다. 그들은 비정상적인 것을 바로잡고 경제를 민주화하겠다는 대통령 후보에게 자신들의 상처를, 마치 예수 앞에 선 나환자처럼 솔직히 내보였고 표를 주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치유가 아니라 모욕이었다. 박근혜 정권 3년을 거치면서 경제민주화 공약은 흐지부지 넘어갔다. 일부 재벌기업의 변칙상속 금지나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에 대한 작은 규제 정도로 축소되었음을 우리는 지켜보았다.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확립을 위한 법규 마련’이라는 형식상의 차원으로 전락했다.
경제민주화의 형식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흔히 대통령 직선제나 헌법재판소 설치와 같은 정치·사법적 측면의 성과만 기억되는 87년 민주항쟁의 한복판엔 경제영역에까지 민주화를 확장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당시 집권 민정당의 노태우 총재 권한대행은 6·29 선언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 민주화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자 당황했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를 ‘체제 수호냐 체제 전복이냐의 싸움’으로 볼 정도였다. 결국 체제 수호를 위한 타협의 산물로 87년 헌법을 내놓았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김종인 대표가 1987년 헌법 개정 작업 때 지도부를 설득해 경제민주화 조항(119조 2항)을 어렵게 넣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당시 기록을 보면, 애초 경제민주화는 훨씬 품이 넓었다. 한국은행 독립, 노동자 경영참가, 이익공유제 등을 헌법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집권여당 일각에까지 퍼져 있을 정도이니, 현재의 조항은 크게 축소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현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정당은 이후 경제민주화 ‘실천 계획’을 내는 등 여러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으나, 당시의 요구들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억눌리고 있다.
이 대목에서 “역사란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되풀이된다”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언명을 떠올려봄 직하다. 80년대 말 두려움에 떨던 집권여당에 의해 추진된 경제민주화가 장대한 ‘비극’으로 마감했다면, 이를 최소화하고 좌절시킨 주역들이 지난 대선에서 권력 유지를 위해 다시 경제민주화 구호를 전면에 내걸었다는 건 ‘희극’이다.
그렇다고 냉소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마르크스가 이어서 말한 대로, 오히려 이 희극은 우리가 저간의 피나는 역사를 웃으며 끝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웃으며 선거에 임하자. 퇴행의 시대라 한들 이 선거제도만은 만만치 않은 위력을 여전히 지녔다. 이로부터 우리의 ‘실질’을 다시 쌓아나가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란 경제적·물질적 관계의 반영이니, 정치민주화의 궁극적 목적도 경제민주화가 아니겠는가. 갈 길이 멀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g@hani.co.kr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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