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배우 마릴린 먼로는 “무엇을 입고 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샤넬 넘버 5”라고 답했으나, 평범한 현대인은 잘 때에도 최소 한 벌의 옷은 입는다. 피부와 가장 먼저 만나기에 ‘최초의 옷’이자 피부에서 가장 나중에 떨어지기에 ‘최후의 옷’인 속옷은 현대인의 피부에 가장 오랫동안 부착되는 물건이다. 현대인이 속옷마저 벗은 채로 있는 시간은 생애 전체의 1% 미만일 것이다.
그런데 현대 한국인의 속옷은 전통과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다. 그래서 속옷 단품을 지칭하는 순우리말 단어조차 없다. 빤스, 난닝구, 부라자는 일본어 발음과 일체인 채로 한국인 몸에 부착되어 100년 넘게 새 이름을 얻지 못했다. 벤토가 도시락이 되고 다쿠앙이 단무지가 됐어도 빤쓰는 계속 빤쓰였다. 1995년 정부는 국민의 언어생활에 잔존한 왜색을 지우겠다며 이 물건들을 각각 팬티, 런닝셔츠, 브래지어로 표기하도록 했지만, 이거나 그거나였다. 물론 한국의 전통 의복에도 속옷 용도를 겸한 것이 없지는 않았으나 팬티와 잠방이, 런닝셔츠와 적삼을 같은 물건이라고 우기기에는 민망했던 듯하다.
신축성 없는 실로 신축성 있는 직물을 만드는 기술은 대략 3천년 전 아라비아에서 창안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직물을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이 발에 딱 맞으면서도 신고 벗기 편한 서양 버선, 즉 양말이었다. 양말을 뜻하는 스페인어 메디아스(medias) 또는 포르투갈어 메이아스(meias)는 중국에서 ‘크거나 작거나 관계없다’는 뜻을 가진 ‘막대소’(莫大小)로 번역되었고, 일본에는 메리아스라는 변형된 발음으로 정착하여 양말과 속옷을 통칭하는 개념이 됐다. 1905년경에는 한반도에도 메리야스 공장이 생겼으며, 1920년대에는 메리야스 제조업이 조선인의 ‘민족산업’이 됐다. 더불어 한국인의 피부도 메리야스와 밀착했다.
옷을 걸치고 띠를 안 매는 것을 ‘창피’라 한다. 현대에 들어와 창피를 모르는 인간이 늘어난 것은, 메리야스 속옷이 맨살을 가려주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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