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게티이미지뱅크
OECD 평균 노동시간 1770시간 VS 한국, 2124시간
의무시간, 특히 공식 노동시간 길다는 점이 문제
의무시간, 특히 공식 노동시간 길다는 점이 문제
지난주에 통계청이 한국인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보고서를 하나 내놓았다. 1999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인의 생활시간 변화상’을 조사해 발표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지난 16년 동안 한국인의 생활시간이 제법 개선된 것처럼 꾸며 놓았다.
우선 평균 수면시간이 1999년 7시간47분에서 2014년 7시간59분으로 12분 늘어난 것이 눈에 띈다. 수면시간 연장은 휴식시간이 늘어났다는 말이니 환영할 일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식사 및 간식 시간은 1시간33분에서 1시간56분으로 23분이 늘었고, 개인위생이나 외모관리에 필요한 개인유지 시간도 58분에서 1시간18분으로 20분이 늘었다. 누구든 느긋하게 식사하고 싶어 하고, 자기 유지를 위해선 되도록 많은 시간을 쓰고 싶어 할 것이라는 점에서 이 변화도 반가운 것이라 할 수 있다. 더 반가운 것은 노동과 학습을 포함하는 의무시간이 7시간57분으로 1999년의 8시간52분에 비해 55분이나 줄었다는 사실이다. 의무시간 감소는 자유시간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개선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생활시간은 여전히 너무 열악하다고 봐야 한다. 이번 보고서에는 출퇴근시간 관련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비수도권 취업자의 출퇴근시간은 1시간11분, 수도권의 경우는 1시간36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출퇴근시간은 노동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노동시간의 일부인 셈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한국인의 노동시간은 너무 긴 편이다. 특히 수도권 취업자의 경우 출퇴근시간과 의무시간을 합쳐 무려 9시간33분을 쓰고 있다. 그뿐 아니다. 수면시간 7시간59분도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시간이라는 점에서, 수도권 취업자는 노동을 위해 무려 18시간32분을 쓰는 셈이 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2014년 여가시간은 4시간49분으로 1999년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한국인의 의무시간, 특히 공식 노동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일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오이시디 국가들의 2014년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1770시간이었고,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124시간으로 멕시코의 2228시간 다음으로 길었다. 2124시간은 오이시디 평균보다 354시간이 더 길며, 8시간 노동일을 기준으로 할 때 이것은 44일 이상에 해당한다. 오이시디 국가 중 연간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1371시간의 독일로서 한국보다 753시간이 더 적었다. 독일인과 비교하면 한국인은 94일, 다시 말해 3개월 이상 노동을 더 하는 꼴이다.
최근 한국에는 ‘헬조선’ 담론이 난무하며 살기 어렵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개인들을 ‘헬조선’에 밀어넣는 최대 요인으로는 통상 취업난이나 고용불안이 꼽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 기회를 잃는다는 것은 소득을 얻지 못한다는 말이다. 더구나 복지가 열악한 사회에서 노동 기회 상실과 소득 확보 실패는 바로 팍팍한 삶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생활시간 관련 통계는 한국에서는 설령 노동의 기회를 잡았다고 해도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루는 24시간뿐인데 장시간 노동과 그에 따른 의무적 활동을 하느라 시간 대부분을 써야 하면 인간다운 삶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요즘은 임금 상승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선 자유시간이 길어야 한다. 자유시간은 노동시간이 크게 단축되면서도 소득이 충분히 보장되어 개인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취업률이 높다 한들 살 만한 사회라 하기 어렵다. 생활시간 가운데 노동시간이 획기적으로 짧으면서 기본소득도 보장되는 사회, 그래서 자유시간이 충분한 사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 지난 4·13 총선 이후 바뀐 정치 지형에서 이런 과제가 어떻게 다뤄질지 궁금하다.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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