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도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회가 동한다”는 말을 쓰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이 말은 ‘뱃속의 회충이 움직인다’는 뜻이기 때문에 99% 거짓말이다. 그의 뱃속에 회충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른 동물들이 대개 그렇듯이, 인류 역시 생물종으로 존재한 대부분의 기간 동안 대다수 개체가 몸 안에 다른 생명체, 즉 기생충을 두고 살았다.
정부 수립 직후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회충 감염률은 전국 평균 50% 이상, 어떤 지역은 90%에 달했고, 십이지장충 감염률은 전국적으로 30% 내외였다. 민물고기를 자주 먹는 강변 지역에서는 디스토마 감염도 흔해서 1949년 당시 낙동강 유역 주민들의 간디스토마 감염률은 50%에 달했다. 1963년 겨울에는 뱃속에 든 1063마리의 기생충이 장을 막은 탓에 아홉살 여자아이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해외 토픽’으로 전세계에 알려졌고, 이 수치스런 상황을 하루빨리 타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폭증했다.
기생충을 죽이거나 몸 밖으로 내보내는 처방은 <동의보감>에도 실려 있고, 민간요법으로는 담배가 주로 사용됐다. 1830년 독일에서 개발된 산토닌이 회충산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들어온 것은 1890년대 말이었다. 약의 효능은 좋았으나 효과는 일시적, 제한적이었다. 분뇨를 비료로 쓰는 농법, 채소를 대충 씻어 날로 먹는 식습관 등으로 인해 한 무리를 몸 밖으로 내보내면 또 다른 무리가 몸 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1964년부터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기생충 박멸운동이 벌어졌다. 이후 10여년간, 전국 학생들은 같은 날 일제히 분변 검사를 받았고, 감염이 확인된 학생들은 같은 날 일제히 구충제를 먹었다. 농작물에 분뇨를 직접 뿌리는 시비법도, 고인 물에 채소를 씻는 일도 급감했다. 오늘날 한국인의 장내 기생충 감염률은 1% 미만으로까지 줄어들었다. 기생충 박멸은 지난 반세기의 한국 역사가 이루어낸 눈부신 성취 중 하나다. 하지만 ‘나라를 좀먹는 기생충’인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아직도 심각성을 못 느끼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전우용 역사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