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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티켓

등록 2016-05-02 19:24

“본사에서 소춘대 유희(笑春臺 遊戱)를 오늘부터 시작하오며 시간은 하오 6시부터 11시까지요 등표(等票)는 황지(黃紙) 상등표에 1원이요 홍지(紅紙) 중등표에 70전이요 청색지 하등표에 50전이오니….” 1902년 12월4일 협률사가 <황성신문>에 게재한 광고문이다. 1902년은 고종이 제위에 오른 지 40년이자 망육순(望六旬, 51살)이 되는 해였다. 대한제국 정부는 외국 특사까지 초청하여 이 ‘양대 경절(慶節)’을 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 행사로 치르려 했다. 경축 공연을 위해 협률사라는 국립 연예단을 설립했고, 공연장으로 로마의 콜로세움을 본뜬 200석 규모의 원형 극장을 지었다. 하지만 그해 가을 콜레라가 창궐하여 행사는 연기되었고, 할 일 없게 된 협률사는 민간을 상대로 공연을 시작했다. 이때 발행된 황색, 홍색, 청색의 3종 ‘등표’(등급표)가 우리나라 최초의 공연 티켓이다.

지정된 시간이나 거리까지만 지정된 장소나 좌석을 점유할 권리를 보장하는 일회용 증표인 티켓은 1880년대 초 여객선에서 처음 발행했고, 곧 온갖 교통수단과 극장, 전시장, 경기장, 목욕탕 등의 시설들로 확대되었다. 발행자가 보관할 것과 매입자가 지참할 것을 한 장으로 만든 뒤 판매할 때에는 매입자용만 끊어서 주었기 때문에 ‘표 끊는다’는 말이 생겼다.

티켓에는 시간, 거리, 등급, 좌석 번호, 가격 등이 적혔을 뿐 매입자의 ‘신분’은 기재되지 않았다. 가장 천한 백정이라도 돈만 있으면 1등표를 사서 상등석에 앉을 수 있었고, 지체 높은 양반이라도 돈이 없으면 하등석에 만족해야 했다. 그래서 티켓은 타고난 신분이 아니라 돈이 지위를 결정하는 시대임을 알리는 증표이기도 했다.

갓난아기들이 세상에 입장할 때 지참한 귀족, 평민, 천민이라는 좌석 티켓이 늙고 병들어 퇴장할 때까지 유효한 상황을 타파하는 것이 근대 이후 인류가 추구한 정의였다. 그 티켓의 이름이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바뀌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는 것도, 현대인이 지켜야 할 대의(大義)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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