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만2600원. 큰맘 먹고 프랑스 파리 왕복 비행기 표 두 장을 끊었다. 대학에 갓 입학한 딸아이와 둘이서 여름방학 동안 유럽을 돌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왜 아빠랑 여행을 가?” 하며 퉁명스럽기 그지없더니 온갖 사탕발림에 드디어 넘어왔다. 난 휴가를 박박 긁어다 쓸 참이다.
요즘 나는, 시인 기형도의 표현처럼 ‘빈집에 갇혔다’. 딸은 학교가 강원도에 있어 기숙사로 옮겼다. 휴일이어도 동아리니 과제니 하면서 집에 잘 안 온다. 위의 아들은 군대에 가 있으니 휴가 때나 볼 수 있다. 아내는 둘째 아이 입시가 끝나자 “자유다!”라고 외치더니 희한한 핑계를 만들어 바다 멀리 떠났다. 석 달 열흘 뒤에나 돌아오겠단다.
식구들을 떠나보낸 집은 집이 아니다. 빈집이고 빈 몸이고 빈 마음이다.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문을 열고 잠근다. 휑한 거실에 쪼그리고 앉아 맥주를 홀짝이는 날이 많아졌다. 술기운이 올라오면 애들 방을 순례한다. 아들 옷장을 열고는 킁킁거리며 체취를 느껴본다. 딸의 책상 앞에 앉아서는 뜻없이 책을 들춰보고 연필을 만지작거린다.
먼지가 뿌옇게 앉은 사진첩도 열어봤다. 고추를 드러내놓고 활보하는 아들, 얼굴에 잔뜩 씨를 묻혀가며 수박을 파먹는 딸의 어릴 적 모습에 킥킥거리다 문득 깨닫는다. 아! 내가 없다, 아버지가 없다. 어린이집 재롱잔치에서도,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도 안 보인다. 딸아이가 가끔씩 내뱉던 말이 쿡 쑤시고 들어온다. “아빠는 내가 태어날 때도 없었잖아.”
맞다. 일에 치여서 못 갔다. 아니 핑계다. 사람이 좋아서 술이 좋아서 밤늦게까지 집 밖을 떠돌았다. 바깥에서 진을 다 뺐으니 쉬는 날은 시체다. 느지막이 일어나 보면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 놀곤 했다. 내 차는 16년 넘게 탔는데도 계기판에 찍힌 주행거리가 고작 13만㎞다. 고향의 부모님을 뵈러 갈 때 말고는 장거리를 뛴 기억이 가물거린다. 내가 방구석을 뒹구는 동안 내 차도 주차장에서 빈둥거렸다.
만회하기가 만만찮다. 아들 녀석은 이제 자기도 어른이니 제대하면 학교 앞에 방을 구해서 자취를 할 거란다. 딸아이는 전공이 오랫동안 공부를 해야 하는 거라 다시 끼고 살기 어렵다. 강원도에 내내 있다가 훌쩍 시집을 갈지도 모른다. 이미 둥지를 떠난 거다. ‘다음에, 다음에’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 다음에가 영영 오질 않을 모양이다.
마음이 초조해진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짜낸 게 여행이다. 군대에 있는 아들은 어쩔 수 없어도 딸과는 함께 갈 수 있다. 스무살로 다 컸지만 난생처음 가보는 유럽이니 다시 어린아이가 될 수밖에 없다. 내 도움 없이는 물 한 모금 얻어 마시지도 못할 것이다. 박물관을 돌며 복잡한 유럽의 역사를 얘기해주면 혹시 나를 감탄의 눈길로 봐줄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며 그동안 못한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거다.
내 야심찬 계획을 들려줬더니 여동생이 대뜸 이런다. “오빠 그러다 병나. 오빠는 휴양지에서 푹 쉴 나이지, 애들 못 따라가.” 덜컥 겁이 나긴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마도 마지막 기회이지 싶은데.
오늘은 어린이날이다. 지금 소파에 퍼져 있는 젊은 아버지들은 벌떡 일어나라, 애들 손잡고 근처 공원에라도 나가라.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다 사줘라. 지금 한나절 동네에서 10만원만 쓰면 될 일이 조금 지나면 한달 내내 유럽을 떠돌며 천만원을 써도 안 된다. 나이 들어 사랑을 잃고 빈집에 갇히지 마라.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김의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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