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댐

등록 2016-05-23 19:31

문명의 발상지들은 모두 강변이다. 강이 비옥한 충적토를 제공하여 농사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강은 모순적이고 변덕스런 자연물이다. 그것은 자체로 물길이지만, 뭍길을 차단하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강은 자기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기름진 토지와 아름다운 경관을 누리게 하다가도 일순 범람하여 문명의 성과들을 쓸어버리곤 한다. 강은 자신과 주변 땅의 형상을 변화시키며 자신이 죽인 것들을 재생시키고 오염시킨 것들을 정화(淨化)한다. 강변에 정착한 사람들은 모순적이고 변덕스런 강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능력을 키워야 했다.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역사가 ‘도전과 응전’을 통해 발전했다고 주장했거니와, 인간에게 가장 자주, 가장 심각하게 도전해 온 자연물은 강이었다.

강의 변덕을 제어하고 위협 요소를 축소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문명 발생 당초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는 김제 벽골제, 제천 의림지, 밀양 수산제 등 삼국시대 이전에 축조된 보(洑)들이 남아 있다.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강 상류의 물길을 막는 일은 이후 수천 년간 지속되었다. 콘크리트로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댐은 1908년에 건설된 동래 성지곡 댐인데, 이는 농업용수가 아니라 사람이 마실 물을 모아 두기 위한 것이었다. 1928년에는 아예 물길을 바꿔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댐이 압록강 지류인 부전강에 건설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홍수 예방, 전기 생산, 농업용수 공급 등 여러 목적을 가진 댐들이 여러 강 상류 지역에 속속 건설되었고 최근에는 4대강 본류에 용도 불명의 댐들이 건설되었다. 우리나라 법에서는 높이 15m 이상의 물막이 시설만 댐이라고 하지만, 억지스런 구분일 뿐이다.

바닥의 흙과 모래, 자갈이 함께 흘러야 온전한 강이다. 댐으로 막은 강은 물은 흐르나 바닥은 흐르지 못하며, 흐르지 못하면 무엇이든 썩게 마련이다. 사람은 산수(山水)를 닮는다는데, 바닥은 썩게 만들어놓고 물 위의 녹조만 걷어내는 짓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전우용 역사학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