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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불도저

등록 2016-05-30 21:24

1394년, 전국에서 징발된 11만8070여명이 50일간의 고역 끝에 한양도성을 쌓았다. 1760년에는 서울 주민 15만명과 고용된 장정 5만명이 57일간의 공사 끝에 개천을 준설했다. 산을 깎고 바위를 부수며 물길을 바꾸는 토목공사는 문명 발생과 동시에 시작되었지만, 중국에서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던 기원전 5세기께나 서울 개천을 준설했던 기원후 18세기나 속도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삽, 곡괭이, 망치와 정의 성능은 거의 변화가 없었으며 사용하는 사람의 힘과 숙련도에 따라 효용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인간의 자연 개조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것은 크고 튼튼한 삽과 곡괭이, 지게 등을 장착하고 어디든지 돌아다니는 건설기계들이었다. 특히 1923년 미국에서 발명된 불도저는 20세기 건설기계의 총아이자 대표 격이었다.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불도저는 1930년대 말 북한 지역의 군수공장과 철도 건설 현장에 투입된 미국 캐터필러사 제품이었다. 그런데 기밀을 요하는 공사였던데다가 현장이 오지였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적었다.

해방 후 미군이 몇 대의 불도저를 가지고 한반도에 진주했고, 이때부터 많은 한국인들이 이 기계의 위력을 알게 되었다. 근처에 불도저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 ‘집채만한 짐짝을 번쩍 들어올리거나 웬만한 언덕쯤은 순식간에 깔아뭉개는’ 모습을 지켜보며 탄성을 지르곤 했다. 1966년 정부는 한일 국교 정상화에 따른 대일 청구권 재정차관 650만달러로 불도저 150대와 그밖의 건설기계 214대를 도입했다. 이 건설기계들 덕에 여의도, 강남, 잠실 개발로 이어지는 ‘돌격 건설’의 시대가 열렸고, 당시 서울시장이던 김현옥에게는 ‘불도저’라는 별명이 붙었다.

지금도 수많은 한국인들이 제2, 제3의 ‘불도저 시장’이나 ‘불도저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웬만한 언덕과 집쯤은 순식간에 깔아뭉개는 기계는, 그 장소에 누적된 역사와 사회관계들도 간단히 깔아뭉개는 법이다. 빠른 건설과 빠른 파괴는 동전의 양면이며 파괴가 언제나 다수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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