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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네온사인

등록 2016-06-13 19:31

전우용 역사학자
전우용 역사학자
한 세기 전까지는 도시에서도 밤이면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밤하늘은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그 하나하나가 모두 신이었다. 수많은 불빛이 반짝이는 상태를 찬란이라 하는데, 이는 곧 신성(神性)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반짝거리는 물건들에 신성이 담겼다고 생각했다. 기도할 때 촛불을 켜놓는 것은 반짝거리는 촛불과 밤하늘의 별 사이에 연고가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며, 금, 은, 보석 등을 특히 귀하게 여겼던 것도 이것들이 영원불변의 속성과 함께 반짝이는 속성도 갖췄기 때문일 터이다.

인류는 네온사인을 발명함으로써 밤하늘의 찬란함을 지상의 일부 구간에 옮겨놓을 수 있게 되었다. 1874년 영국인 윌리엄 크룩스는 유리관 안에 가스를 채우고 강한 전압을 흘려 밝은 빛을 내는 조명기구를 만들었다. 1893년 미국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이 물건은 일차적으로 발광체의 형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목받았다. 1898년 네온가스가 발견된 뒤, 이 물건은 조명기구를 초월한 새로운 물건이 되었다. 네온가스가 주입된 유리관은 생명, 사랑, 열정, 광기 등을 상징하는 선명한 붉은빛을 뿜어냈다. 푸른색을 내는 아르곤, 주황색을 내는 헬륨 등이 네온의 뒤를 이었으나 이 종류의 발광체들은 모두 네온사인으로 불렸다. 네온사인은 지상에 내려온 별로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을 끌어당겼다.

한반도에 네온사인이 상륙한 것은 1930년대 초였다. 이 물건은 조미료 광고탑이나 주단 포목상 간판으로도 쓰였으나, 아무래도 해 질 녘에 문을 열고 해 뜨기 직전에 문을 닫는 업소들에 더 어울렸다. 1930년대 초에 이미 ‘네온가(街)’라는 말이 ‘홍등가’라는 말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네온사인에는 퇴폐와 향락이라는 이미지가 들러붙었다.

옛사람들은 밤하늘에서 찬란히 빛나는 무수한 별들을 우러러보며 자신을 성찰했으나, 현대인들은 밤거리에서 찬란히 빛나는 무수한 네온사인들 사이에서 욕망을 불태운다. 네온사인은 자기 욕망을 신성시하는 현대의 표상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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