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3일 미국 뉴욕주 빙엄턴에서 총기난사 사건으로 13명이 숨졌다. 유럽 순방 중이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지 4시간30분 만에 성명을 발표했다. 오바마는 “몰상식한 폭력 행위”를 규탄하면서 “정부가 상황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국민을 안심시켰다.
빙엄턴 참극은 전임자들 시기에 그랬듯, 오바마 임기 8년간 벌어질 숱한 총기난사의 전조일 뿐이었다. 지난 12일 새벽(현지시각) 50명이 숨진 플로리다주 올랜도 나이트클럽 참사를 포함해 스물두번이나 몰상식한 폭력이 반복됐다. 단순 총기사건을 제외한 스물세건의 총기난사 사망자만 228명에 이른다.
오바마는 총기난사 때마다 성명을 냈다. 하도 자주 발표하다 보니 애도에도 일정한 ‘패턴’이 나타났다.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수사당국을 최대한 돕겠다는 의지를 밝힌 다음, 구체적인 사항은 조사 중이니 성급한 판단을 자제해달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규제받지 않는 총기 소유에 근본 원인이 있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미국 총기난사 사건은 수시로 ‘속보’로 타전됐다. 그때마다 나온 오바마의 성명은 유려했으나 상황을 개선할 힘이 없었다.
‘설마 이번에는 총기 규제를 강화하겠지’ 개인적으로 딱 한번 기대를 품은 적이 있다. 2012년 12월14일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참사 때다. 너무 사랑스러워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닳을까 아까운 초등학생 20명과 교사 6명을 넋 놓고 잃은 뒤였다.
오바마는 그날 울었다.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성명을 발표하면서 왼쪽 눈에 맺혔던 눈물을 왼손 가운뎃손가락으로 가만히 닦아내던 기억이 아직 뚜렷하다. 오바마는 “지난 몇년간 이런 비극들을 너무 많이 겪었다. 미국에 나 같은 압도적인 슬픔을 느끼지 않는 부모는 한명도 없다는 걸 안다”며 벼렸던 칼을 꺼내들었다. 그러곤 한달 뒤 군용 공격무기와 대용량 탄창 금지, 총기 구입자 신원조회 강화 등을 망라한 강도 높은 법안을 내놨다.
오바마가 믿은 ‘부모의 심정’으로 미국 사회도 몰상식한 총기 소유권을 내려놓는 상식을 회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막강한 로비력을 지닌 총기협회는 오바마의 ‘칼’을 쉽게 무력화시켰다. 오바마는 총기협회의 후원을 받는 공화당 의원이 다수인 상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샌디훅 이후 열한번째인 올랜도의 비극으로 이어졌다.
올랜도 참사는 미국 현대사에서 최대 사망자를 낸 총기난사다. 이번엔 총기 규제에 성공할 수 있을까? 마침 11월 대선이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인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강력한 총기 규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샌디훅을 겪고도 그대로인 미국 사회가 올랜도 이후엔 달라질 수 있을까. 또다시 기시감이 강한 참사를 보도해야 할 것 같은 두렵고 슬픈 예감이 엄습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런 비극이 일상이 됐습니다. 그런 기사도 일상이 됐습니다. 여기 연단에서 성명을 발표하는 것도 일상이 됐습니다.” 지난해 10월 오리건주의 대학에서 총기난사로 10명이 숨진 뒤 오바마가 발표한 성명이다. ‘이런 비극’ ‘그런 기사’는 미국 총기난사를 지칭하지만, 지구촌 도처에서 일상이 된 수많은 비극에 대입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큰 비극을 겪고도 그 비극을 잉태한 일상에 균열을 내지 않을 때, 반복되는 비극을 피할 길은 없다는 걸 증명하는 사례는 미국이 아니어도 너무 많다.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채 벌써 세월호 참사의 처절한 교훈을 잊어가고 있는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
전정윤 국제뉴스팀 기자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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