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불평등이 심하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다. 한편으로는 갈수록 적은 사람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축적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내몰린다. 이런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소수 개인들이 장악한 30대 재벌 사내유보금은 거대한 규모로 늘어난 반면, 다수 개인들은 갈수록 더 많은 빚을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내유보금이란 기업이 자본거래를 하다 생긴 자본잉여금과 거둬들인 이익을 배당하고 남은 이익잉여금을 합쳐 쌓아둔 돈이다. 2015년 말 기준으로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754조원 가까이 된다. 같은 해 3월 말보다 44조원이나 늘어난 액수다. 사내유보금은 기업 것이지만 알다시피 이들 기업을 장악하고 있는 게 총수 일가다. 올해 30대 재벌 총수 일가가 챙겨가는 배당금만 9500억원이라고 한다.
반면에 일반 개인들의 경제 상태를 말해주는 가계부채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할 뿐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1997년 말 211조원이었으나 최근 들어와 위험할 정도로 몸집이 커져 그 규모가 2015년 말 현재 1200조원이 넘는다. 공식상 기업부채로 산정되지만 사실상 가계부채인 자영업자 부채를 포함시킬 경우 가계부채 규모는 1400조원을 초과한다는 지적도 있다.
가계부채와 사내유보금 간의 정확한 인과관계를 따지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기업들이 큰돈을 모은 반면 개별 가계는 빚에 쪼들리게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빚진 사람들이 많아진 때문인지 한국인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다. 자살률이 증가한 시기와 가계부채가 급증한 시기는 거의 일치한다.
재벌 기업들이 유보금을 불리는 동안 우리네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지금 한국에는 비정규직이 너무 많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3월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43.6%인 839만명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한 데 따른 것으로, 실제 비정규직 비율은 50%가 넘는다고 한다. 청년층에서는 그 비율이 더 높다. 2015년 청년층 신규채용 가운데 비정규직은 6년 만에 10%나 증가해 64%였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사내유보금도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이익을 제대로 환원하지 않고 독차지한 결과 비정규직이 늘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열아홉 살 청년 노동자 김아무개씨가 서울 구의역에서 지하철 안전문을 고치다 사고로 사망한 사건은 많은 이들의 슬픔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이 추모 공간으로 마련된 역 승강장 유리벽과 역무실 벽에 접착식 쪽지를 붙이거나 조화를 바치며 애도를 나타낸 것은 김씨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추모에 참여한 시민 가운데는 20, 30대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사고 며칠 후 여야 정치인들이 부랴부랴 사고 현장을 찾은 것도 이들의 분노를 의식한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김씨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일도 사내유보금과 무관하지 않다. 기업은 요즘 필수 노동마저 외부에 맡기고 이익만 챙기려는 비열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관행을 허용하는 사회구조로 인해 열악한 노동일수록 하청업체에 떠맡기는 ‘위험의 외주화’가 만연한다. 김씨는 서울메트로 하청업체인 은성피에스디의 비정규직이었다. 그가 사망한 지 나흘 뒤 남양주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또 목숨을 잃은 노동자 4명도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다.
30대 재벌의 대규모 사내유보금은 특혜의 산물이다. 그런 돈을 만들어내려면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재벌은 사정이 어려워 구조조정을 해야 할 때는 공적자금을 지원받고, 이익이 발생하면 제 것으로 챙길 수 있는 사회구조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사내유보금이 ‘손실의 사회화’와 ‘이익의 사유화’로 생겼다면, 이제 그것을 사회화할 방안을 생각할 때가 됐다.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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