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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수연이에 대하여 / 홍은전

등록 2016-06-20 16:28수정 2016-06-20 19:48

수연이는 열살. 생후 5개월에 망막 장애 진단을 받았다. 볼 수 없는 아이를 위해 엄마는 무엇이든 만지고 느끼게 해주어야 했다. 다섯살, 아이에게 자신의 얼굴을 때리는 자해행동이 시작됐다. 자폐성 장애. 그래서 중복 장애다. 수연이의 엄마는 서른여덟. 독일어를 전공해 외국계 회사에 다니던 중 수연이를 낳았고 복귀하지 못했다. 수연이는 그녀의 첫아이이자 처음 만난 장애인. 아무도 그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모든 건 이제 막 이 낯선 존재의 엄마가 된 그녀의 몫. 죄책감에 힘겨워하며 병원과 치료실을 쫓아다니느라 30대를 다 보냈다. “누가 내 이름을 좀 불러주면 좋겠어요. ‘수연이 엄마’ 말고.” 해사하게 웃는 그녀의 이름은 이혜정.

6월8일 서울시청 앞에서 발달장애인 지원 대책을 마련하라며 엄마들이 삭발을 했다. 아이 보살피는 고통이 너무 크니 함께 져 달라며 울었다. 일찌감치 그녀들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으나 며칠째 어떤 한 문장에 가로막혀 그것만 노려보고 있다. 나는 서른여덟. 아이를 가질지 말지 고민 중이다. 이 시기 모든 여성들이 그러하듯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입 밖으로 꺼내지도, 훌쩍 뛰어넘지도 못하는 그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나는 장애 아이를 낳을까봐 두렵다.’ 이것을 절대 ‘발화’해선 안 된다는 어마어마한 금기가 내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그녀들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것을 말해도 되는가. 아니, 이것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녀들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는가. 가임기 여성들의 숨통을 옥죄는 수많은 금기들이 향하는 곳, 거기에서 그녀들이 지금 울고 있지 않는가.

나를 단속하는 금기와 그것에 대한 나의 괴로움은 그녀들의 죄책감과 연결된다. 그녀들의 고통을 지켜봄으로써 금기는 더욱 강화될 것이고, 금기에 순종할수록 그녀들의 죄책감도 타당한 것이 될 것이다. ‘장애 아이를 낳아선 안 된다’는 금기는 장애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결과이므로 그것 자체를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오직 금기로서만 작동하는 한 그에 대한 대책이 마련될 리 없다. 결국 양육 혹은 유기의 책임은 가족 안 가장 약자인 엄마의 몫. 그러니 대책이 없으면 없을수록 엄마의 죄책감은 유용할 것이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의 이야기 <그래, 엄마야>는 수많은 ‘이혜정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발췌하기 위해 천천히 옮기다가 자주 손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아, 이건 너무 비참하잖아. ‘우리 집안엔 그런 아이 없다’는 시부모의 책임 전가,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않는’ 남편의 비겁함, 엄마의 고통 따위엔 관심도 없는 의사들의 무례, 노골적 차별과 배제를 일삼는 학교의 무책임과 뻔뻔함. 그녀들을 향한 전방위적 무시와 푸대접이 하도 기가 막혀서 나는 그녀들이 진짜 죄인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상상에서 애써 밀어내도 수연이는 태어난다. 엄마가 최선을 다했으므로 수연이는 수연이의 조건 위에서 가장 건강하다. 그녀들에겐 죄가 없다. 이 당연한 것을 말하기 위해, 우리는 상상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그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낳게 될 수연이와 수연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치료비가 얼마인지, 학교는 안전한지, 성인이 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법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수연이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준비되지 않은 존재에 대한 책임은 ‘가족’이 아니라 전적으로 ‘엄마’가 지게 될 것이다. 아이를 낳을 부부들, 특히 아빠들에게 <그래, 엄마야>를 권한다.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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