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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 읽기] 혹독하게 자유로운 / 홍은전

등록 2016-07-18 17:55수정 2016-07-18 18:57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꽃님씨는 노들야학 학생이다. 8월이면 시설에서 나온 지 꼭 10년이 된다. 파란 많았던 그 시간을 기념하기 위해 꽃님씨는 자신만의 의식을 준비했다. 그것은 그녀가 시설에서 나와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두 단체(‘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과 ‘노들’)에 기부금을 내는 일. 그런데 그 금액이 자그마치 2천만원이다. 그녀가 얼마나 지독한 자린고비였는지 익히 알고 있던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다. “그 돈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요!” 그러자 그녀는 이 순간을 위해 10년을 기다려왔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너희들 예뻐서 주는 거 아니여. 시설에 있는 사람들, 한 명이라도 더 데리고 나오라고 주는겨.”

꽃님씨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다. 전라남도 영광에서 태어났으나 바다 한번 보지 못하고 40년을 방 안에서만 살았다. 마흔한살 되던 해,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 시설에 들어갔다. 그녀는 여전히 갇혀 지냈고 원장은 종종 그녀에게 밥을 주지 않는 벌을 내렸다. “거긴 사람 살 곳이 못 돼.” 그럼에도 그녀는 실태조사를 나온 인권활동가에게 ‘이곳 생활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활동가는 떠나도 그녀는 거기서 계속 살아야 했다. 그러나 원장이 그녀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몰아세우는 일이 반복되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미쳐가는 기분 아남? 3년을 살았는데 꼭 300년을 산 기분이었제.” 그녀는 인권활동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좀 데리고 가주면 안 되겄소.”

활동가들은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다. 중증장애인이 혼자 살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너무도 열악했다. 그러나 꽃님씨의 계속된 구조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던 활동가들은 일단 부딪쳐보기로 했다. 2006년 8월, 꽃님씨는 낯선 활동가들을 따라 생면부지의 땅 서울에 도착했다. 그렇게 기적과도 같은 자유를 만났다.

자유의 대가는 혹독했다. 활동보조서비스가 부족해 하루 한 끼밖에 못 먹던 시절이 있었고, 룸메이트였던 장애 여성이 화재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공포에 짓눌려 밤을 지새우던 시절이 있었다. 턱없이 비싼 월세를 내면서도 언제 쫓겨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있었고, 고대하던 영구임대아파트에 당첨되었으나 야학과 거리가 너무 멀어서 휴학을 하고 다시 집 안에만 갇혀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딱 한 번만이라도 누군가를 붙들고 펑펑 울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고, 의지하고 싶은 친구를 만나 잠시 다정했으나 그가 세상을 떠나고 더 외로워진 시절이 있었다. 그녀는 그 모든 시간을 부딪쳐 살아냈고, 힘들게 얻은 자유를 사랑했다. “나는 행복해. 그런데 나만 이렇게 행복하면 너무 미안하잖여.”

모욕적인 자선을 거부하고 위태롭지만 당당한 자립을 선택한 그녀. 그리고 혹독하게 자유로웠던 10년의 증거, 2천만원. 매월 20만원씩 차곡차곡 모았던 그 행위는 평생 자신에게 씌워졌던 ‘쓸모없는 존재’라는 누명을 벗기 위한 그녀만의 의식이 아니었을지. 10년 전 활동가들의 손에 이끌려 서울에 도착한 꽃님씨가 이제는 반대로 활동가들의 등을 떠민다. “어서 가서 한 사람이라도 더 데려와. 내가 차비 줄 테니까.” 아름다운 역전. 꽃님씨의 탈시설 10주년과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의 탈시설 운동 11주년을 함께 축하한다. 용감했던 그들이 온몸을 던져 살아온 10년 동안 ‘시설 수용’ 일변도였던 장애인 정책에 균열이 생기고 ‘탈시설-자립생활’이라는 새롭고 정의로운 흐름이 만들어졌다. 두 단체는 그녀의 기부금을 탈시설-자립생활을 위한 ‘꽃님 기금’으로 조성하여 탈시설 운동에 사용할 계획이다. 많은 사람이 함께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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