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을 지은 허균(1569~1618)은 ‘호민론’을 썼다. 이 글은 “천하에 두려워할 바는 오직 민중뿐인데,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왜 민중들을 업신여기면서 가혹하게 부려먹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민중을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의 세 갈래로 나눈다. “이루어진 것만을 더불어 즐기고 항상 보는 것에만 얽매이며, 순순히 법을 지키고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항민은 두려워할 바가 못 된다. “살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부서지면서도 끝도 없는 요구에 이바지하느라 시름 하고 탄식하면서 윗사람을 탓하는” 원민도 두려워할 바가 못 된다. 그러나 “자신의 자취를 푸줏간에 숨기고 몰래 다른 마음을 품고서 세상을 흘겨보다가, 뭔 일이라도 벌어지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현하고자 나서는” 호민은 몹시 두려워할 존재다. “호민이 팔을 휘두르며 밭두렁 위에서 한 차례 소리를 지르면, 그 소리만 듣고도 원민은 모의하지 않고도 함께 외쳐댈 것이고, 항민은 살기 위해 농기구를 들고 따라와서 무도한 놈들을 쳐 죽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오랫동안 역사는 민중이 자신을 다스리는 방향으로 흘러, 오늘날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는 단계에까지 왔다. 하지만 ‘호민론’에 나오는 조선 민중의 모습과 오늘날 민중의 모습은 본질에서 얼마나 다를까? 항민과 원민의 자리에, 침묵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일터에서 죽어간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입해 보면 어떨까? 최근 문제가 됐던 “민중은 개돼지”, “민주주의 자체가 천민민주주의” 등의 망발은, 예외적 소수의 일탈적 인식이라기보다 중세 봉건 사회와 다를 바 없는 오늘날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 큰 절망감을 준다. 민주주의의 본질인 ‘민중의 힘’을 업신여기며 “중세로 돌아가자”고 거리낌 없이 떠들어대는 오늘날의 귀족들을 두렵게 만들 호민의 외침이 절실하다.
최원형 여론미디어팀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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