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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국적 사이키델릭 혁명의 최고봉

등록 2016-07-22 19:11수정 2016-07-22 19:29

[토요판] 성기완의 노랫말 얄라셩
박정희의 폭정과 ‘햇님’
햇님
작사·곡 신중현 노래 김정미

하얀 물결 위에 빨갛게 비추는
햇님의 나라로 우리 가고 있네
둥글게 솟는 해 웃으며 솟는 해
높은 산 위에서 나를 손짓하네
따뜻한 햇님 곁에서 우리는 살고 있구나

고요한 이곳에 날으는 새들이
나를 위하여 노래 불러주네
얼마나 좋은 곳에 있나 태양 빛 찬란하구나

얼굴을 들어요 하늘을 보아요
무지개 타고 햇님을 만나러
나와 함께 날아가자
영원한 이곳에 그대와 손잡고
햇님을 보면서 다정히 살리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신중현이 짓고 전설의 여가수 김정미가 부른 ‘햇님’은 한국적 사이키델릭 록의 최고봉이다. 신비스러운 명반 에 수록된 이 평화로운 노래가 발매된 것은 박정희의 폭정이 극에 달했던 1973년이었다.

한국 근대 대중음악은 30년 주기의 지각변동을 겪어왔다. 그 첫번째는 1930년대 조선에서 으뜸이던 불세출의 뮤지션 김해송이 도입한 재즈로 인해 찾아왔다. 김해송은 흑인에게서 유래하고 미국이라는 용광로에서 자란 재즈의 리듬을 과감히 타령조의 우리 민중음악에 접목시켰고, 그 결과 한국 최초의 모던한 팝이 기틀을 다지게 된 것이다. 1930년대의 모던 보이들은 이 음악을 통해 그대로 세계시민이 되었다.

두번째 지각변동을 일으킨 이는 신중현이다. 그는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엘비스 프레슬리에서 시작하여 비틀스, 지미 헨드릭스 등으로 진화해간 로큰롤 혁명을 산 채로 떠서 우리의 말과 정서에 어울리는 음악적 문법으로 간단히 정리해 버렸다.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의 이 사운드는 몇 년의 시간차를 두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부터 남한의 서울, 필리핀의 마닐라, 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수도 아부자에 이르기까지 전세계를 뒤덮었다. 인류 최고의 불꽃놀이였다.

“타올라라, 타올라라, 끝내주는 폭죽처럼 타올라라…”(burn, burn, burn like fabulous roman candles…)

미국의 비트 작가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On the Road)에 나오는 위의 구절처럼, 사운드의 불꽃놀이는 나라마다 사회마다 그 의미와 색깔들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한 세대의 청년들에게 완전한 의미의 매혹으로서의 일종의 ‘얼얼함’을 가져다주었다. 한국에서 타오른 불꽃의 이름은 많았지만, 그중 가장 두드러진 이는 신중현이었다. 그는 1960년대 초 애드포(ADD4)를 결성한 이래로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유신정권에 의해 목청이 꺾일 때까지 근 십여년을 한국적인 사이키델릭 록 음악으로 화려하게 수놓았다.

세번째 지각변동은 1990년대에 서태지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는 헤비메탈과 힙합의 양 날개로 ‘십대라는 소수자’들의 정치적, 문화적 요구사항들을 보듬었다. 한국 최초로 음악은 음악을 넘는 신드롬이 되었고 그것은 사회적 현상으로 다뤄져야 했다.(노랫말 얄라셩 8 ‘교실 이데아’ 편을 참고할 것)

이 지각 변동 중에 가장 화려했던 것은 신중현과 함께 한반도를 스치고 지나간 사이키델릭 혁명이 아닐까 싶다. 당시는 아주 모진 시절이었다. 박정희가 철권을 휘두르고 어른들은 이른바 ‘청년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노재봉 - 요사이 대중문화란 것을 저는 동작문화라고 봐요. 그것을 저는 새로운 창조적인 문화요인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기분 해소로서는 이해되지만, 그것에 창조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은 마치 생물학적인 반복적 신진대사를 문화라고 보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토론 - 유행이냐 반항이냐, 노재봉, 이어령, 최인호, 한완상, 현영학(토론자), 오갑환(사회자), 신동아, 1974년 7월)

노재봉 같은 학자의 보수적 문화개념에서 벗어나 있는 이 문화를 ‘반문화 counter-culture’라고 부른다. 반문화의 주인공은 ‘히피’였다. 히피들의 원색적이고 황홀한 색채감은 물론 맨정신에서 온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환각의 상태에서 소리를 손끝으로 ‘만졌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기원에서 물을 퍼다 마셨고 평화는 무지개처럼 창가에 걸렸다. 이때의 평화는 치졸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었다. 거대한 축제의 현장을 누비는 청년들의 참을성 있는 발걸음이었다.

한국적 사이키델릭 록의 최고봉을 신중현이 만든 ‘햇님’이라는 노래에서 만날 수 있다. 신중현이 짓고 전설의 여가수 김정미가 불렀다. 신비스러운 명반 가 발매된 것은 1973년. 박정희의 폭정이 극에 달했을 때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평화로운 노래가 나올 수 있었을까?

“얼마나 좋은 곳에 있나 태양 빛 찬란하구나”

어쩌면 이것은 하나의 극단적인 현실 부정일 수도 있다. 스탠더드 팝 ‘오버 더 레인보’(Over the Rainbow)가 대공황 시기에 나왔듯, 현실이라는 벽을 깨끗하게 지우는 환상의 나래가 펼쳐지는 시기는 역설적으로 괴로움이 극에 달했을 때다.

“햇님의 나라로 우리 가고 있네
따뜻한 햇님 곁에서 우리는 살고 있구나”

눈물겹다. 눈부시다. 하나의 노래는 하나의 여정이다. 그로테스크한 굉음이 귀를 때릴 때 어둡고 음습한 소리의 골짜기를 거쳐야 한다. 그러고 나면 평온하고 너른 들판이 나온다. 들판은 녹색이고 그 넓은 융단 위에 맺히는 해의 작렬은 붉은 피의 잔상을 남긴다. 이때의 해, 이때의 핏빛은 잔인하지 않다. 이내 그것은 핑크빛이 된다. 영원한 평화와 사랑의 모성이 우리를 손짓한다. 노래는 현실을 잊는다. 넘어선다. 노래는 또한 어딘가로 우리를 데려간다. 궁극의 그곳, 노래는 다만 암시할 뿐이다.

‘햇님’의 후반부에 나오는 음악적 반전을 이루는 것은 현의 지속음이다. 굉장한 기를 머금고 있는 이 단선율은 절정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기념비적인 단선율과 함께 사이키델릭한 가요의 어떤 경지가 펼쳐진다.

“무지개 타고 햇님을 만나러
나와 함께 날아가자”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그다음엔 그저 ‘라, 라, 라~’의 반복이면 족하다. 햇님과 함께, 영원히, 사라질 때까지. 사랑 노래의 정치성. 신중현의 가사는 일면 지나치게 서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 그 안에 일상의 구체적인 정황들은 묘사되기보다는 상징적으로 지워진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방어수단이었을 수도 있다.

한국 문화는 암흑기로 점철되어 있다. 일제라는 암흑기를 넘으면 군사독재라는 또다른 암흑기가 그 뒤를 잇고, 그다음은 신군부의 암흑기다. 그러고 나면 신자유주의의 암흑기…. 노래를 부르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노래는 힘이 없다. 바위는 굳건하고 체제는 깨지지 않는다. 이때 작동하는 것이 힘없는 노래의 힘이다. 그것은 위험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위험하다. 1975년, 박정희 정권은 ‘대마초 연예인 일제 단속’이라는 철퇴를 내려친다. 신중현의 모든 것은 그때 일시적으로 중단된다.

성기완 시인
성기완 시인
자 이제, 꿈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온다. 우리 음악의 또 다른 지각변동을 누가 준비하고 있나? 30년 단위라면 2020년대 중반쯤? 한 십년,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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