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한류 중국 현장의 찬바람은 완연한 겨울은 아니지만 예상보다 차가웠다. 한류 경제가 얼마나 큰 암초를 만났는지 정확히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 각지에 성(省)급, 시급 정부와 티브이미디어그룹, 그리고 여러 한류 기획사가 산재해 있고, 이들이 속마음을 다 털어놓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7월25~29일 방송통신위원회의 중국 방문단이 저장성 원저우와 장쑤성 난징 등 지방도시들을 순회하면서 감지한 것은 베이징 중앙정부에 의한 ‘전면 중단조처’보다는 각 당사자들의 ‘자율적 판단’ 쪽에 가까웠다. 내가 믿고 지원 부탁을 하려 했던 베이징 중앙의 실력자도 완곡한 말로 “약속된 지방정부에 가서 해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동안 나와 상당한 ‘관시’(關係, 인맥)를 쌓아온 원저우 시정부와 원저우라디오티브이그룹은 예정대로 면담했고 방송 콘텐츠 교류 협력을 확대하자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 개척하려 했던 장쑤성 정부와 장쑤티브이가 약속 일정을 갑자기 취소했다. 이런 분위기가 중국의 단계적 대응일진대 한류 콘텐츠 제재가 더 크게 번지지 않도록 신속히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하겠다. 중국에 얘기할 가장 기본적인 논리는 정치군사 문제와 비정치군사 분야인 한류 콘텐츠를 분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정치군사인 경제와 산업, 방송 콘텐츠 교류를 더욱 확대·강화해가야 상호 국익증진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한·중 정책당국이 공유하는 게 긴요하다. 혹시라도 ‘사드 보복의 그림자’가 한류 문화 영역인 방송 콘텐츠와 미디어 오락산업에까지 드리우지 않게 한류 외교를 적극 펼쳐야 할 상황이다. 그럴 때 한·중 간에 공유한 ‘끈’을 최대한 활용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중 양국 국민은 오랜 기간에 걸쳐 역사적 공동경험을 갖고 있으며 현재의 단기적 문제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잘 내세워야 한다. 나는 장쑤성 정부가 약속을 취소했을 때 현지에서 대체 일정으로 난징대학살 역사관과 일본군위안소 현장보존관을 방문했다. 일본군위안소 보존관에서 익히 이름을 아는 한국 정신대 할머니 몇분의 사진을 보았다. 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방명록에 적었다. “인류사적으로 슬픈 현장에서… 이 한·중 공동의 역사 소재가 콘텐츠 공동제작을 통해 후손 대대로 전해지기를….” 난징대학살 역사관은 40도가 넘는 폭염에도 관람객이 줄을 이었다. ‘300,000’이라는 숫자가 커다랗게 벽에 쓰여 있었다. 1937년 12월 당시 난징시 100여만 인구 중 80여만명이 사라졌으나 일본 쪽과 합의한 학살자 숫자가 그것이라고 했다. 나는 우리의 3·1운동 때 수원 제암리 학살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일본 군경이 자행한 살상들을 떠올렸다. 한·중 양국 국민이 겪은 공동의 치욕사로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독일 나치의 악행에 대한 서구의 영화, 드라마, 소설에 비하면 이같은 일본군국주의 죄과를 소재로 한 콘텐츠는 턱없이 부족하지 않은가. 이는 아시아 지역, 특히 한·중 문화예술인들의 역할의 한계였으며, 오늘날 콘텐츠 기획제작자들에게 주어진 소명이라 할 수 있다. 이제 한류 경제는 해외수출 5조6291억원으로 결코 만만치 않은 규모다. 그중 방송 콘텐츠 수출액만 연간 2819억여원이며, 중국·홍콩이 42.8%(1205억원), 그다음이 일본 30.8%(869억원)이다. 한 중국 기업인은 자국 정부 인사들을 두루 접촉한 뒤 이렇게 말했다. “오는 9월 초 항저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과 박근혜 대통령이 양자회담 모습이라도 보여주어야 이 찬바람이 가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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